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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Jul 12. 2020

여자사람지인 인터뷰; 토론팀 히하호

우리 주위 여성들의 솔직한 페미니즘 이야기



에디터 아햍먼과 펑션은 아는 페미니스트가 없다. 위대한 업적의 페미니스트들과 친분도 없고,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염치도, 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수많은 여성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가정 내 불평등에 맞선다거나, 사회 편견에 맞서 꿈을 향해 걸어간다거나, 그저 오늘 자신에게 충분한 칭찬을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이야기는 가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돈도 없고 친분도 없는 김에) 책 속에나 나올 법한, 강연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 말고, 평범한 주위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세상에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여자 사람 지인의 인터뷰가 시작된다.




1호의 주인공은 펑션과 함께 토론대회를 누비는 친구들이다. 그들은 처음으로 참가한 전국토론대회에서 준우승을, 이어서 참가한 교내토론대회에서는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교내토론대회의 주제는 여성할당제였다. 그들이 여성 인권에 대해 어떤 주장을 펼쳤는지, 논리적이고 공격적인 ‘말하기’를 하며 느꼈던 것은 무엇인지, 여성들이 이뤄낸 성취와 노력의 모든 과정에 관해 묻고자 한다. 그들의 ‘말하기’가 토론 경기장을 넘어 세상으로 향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부족하지만 잡지 몇 페이지를 내준다.


이 팀의 이름은 ‘히하호’다. 웃으면서 토론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실제 대회장에서는 웃기는커녕 찬바람이 쌩쌩 분다는 후문. 무서움을 무릅쓰고 잡지에 쓸 닉네임을 물었더니 갑, 을, 병으로 해달라고한다. 토론 상에서의 역할 분담 명이기 때문이다. 왠지 벌써부터 인터뷰가 반박과 재반박으로 이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토론대회에 참가해 우승에 이르기까지



교내토론대회에 참가하려고 했던 이유가 뭔가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번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서 교내대회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고 여겼거든요. 저희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성적을 많이 남겨놔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는 거절을 했었는데 을 역할이 구해지지 않아서 못 나갈 상황이 됐었어요. 그 상황에서 미안함도 있었고 병이 못 나가는 걸 친구로서 볼 수 없어서… 저는 저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병 때문에 했죠.


     저희가 전국대회 마치고 교내대회 이야기도 했었어서 자연스럽게 같이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을 역할이 구멍이 나게 되면서 마음이 흔들렸는데 을이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래. 가자!” 이렇게 되었죠.



그럼 병이 가장 먼저 이 대회에 참가하자고 한 건가요?


     맞아요. 저희는 전국대회를 먼저 나갔는데요. 저는 저의 말하기 능력이나 논리적 사고력이 정말 존재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토론 관련 수업도 찾아서 들었고요. 그래서 대회를 나가기 위해 팀을 구성하게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우승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능력 위주로, 그냥 잘하려고 뽑았어요. 그런데 결과가 잘 나오고 팀워크도 정말 좋아서 ‘무조건 교내대회도 먹어야겠다!’ (웃음) 생각했고, 전국 대회에서 준우승해서 아쉬운 마음을 우승으로 달래고 싶은 마음도 컸죠.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남들과 확연히 다른 연습 과정이 있었나요?


    저희의 독자적이고 구체적인 진행 방식이라고 하면 ‘모의 토론’이 있어요. 실제 토론과 형식은 똑같이 하면서 한 명은 반대, 한 명은 찬성, 한 명은 사회를 맡은 상태로 일대일로 진행하는 거예요. 사실 한 명이 (갑, 을, 병이라는) 세 역할을 다 하는 거니까 되게 힘들 수는 있어도, 실제로 토론하는 거다 보니 찬/반의 논지를 더 명확히 알게 되고, 다른 역할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져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진심과 체화예요. 내가 정말 공감할 수 있는지. 그래서 다른 팀과 달리 자료조사보다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해진 입장에 따라 날 속이는 게 아니고,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먼저 정하고, 그게 납득이 가도록 자료를 부가적으로 찾아서 논리구조를 짜는 데 집중한 거죠. 계속해서 질문, 반박, 질문, 반박… 이걸 반복하다 보면 나름대로 반박이 불가한 주장들이 만들어져요. 그러면 그걸 완전히 체화해요. 자신 있게 체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전국대회 때는 자료 한 장 없이 백지 에이포용지만 몇 장 들고 갔어요.


그걸 받쳐주는 게 연습량이고 연습 방법이에요. 연습량 하나는 저희가 일등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모의 토론’ 방법을 만든 이유도 ‘우리가 지금 이 정도로 어렵게 연습해야 가서 조금 긴장해도 100%가 나올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건, 대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입장이 결정되면 저희끼리 모여서 (찬성이면) “찬성해야지~ 무조건 해야지~ 아니, 왜 안 해? 우리는 물러설 길이 없어!” 이렇게 최면같이 이야기해요. (웃음) 사실 찬/반을 왔다 갔다 하면 많이 헷갈리거든요. 그래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사기도 엄청나게 올라가고요.



들어보니 연습량이 엄청난 것 같은데, 연습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전국 때는 좀 힘들었어요. 처음이라 할 것도 많았고, 떨렸고. 다른 팀이랑 처음 연습했을 때는 집 가는 길에 울기도 했어요. (웃음) 제가 못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이번 교내토론대회 준비를 할 때는 저번 대회 성적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팀원들도 용기를 줘서, 확실히 덜 힘들었죠. 좀 힘들었던 건 시험공부? 그런데 그조차도 바쁜 와중에 다들 꾸역꾸역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불가능한 건 아니구나.’ (웃음)


     저는 그런 걸 말하고 싶어요. 과제나 토론이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사고력을 기르는 게 본질이잖아요. 그 과정이 생각보다 별로 재미없지 않다는 거. 그 여성할당제라는 어려운 주제로 이야기 나누면서도 어렵지만, 생각보다 되게 흥미로웠거든요. 편견인 거죠.



셋은 이미 친구 사이잖아요. 모르는 사람끼리 하는 보통의 대학 팀플과 이 팀플의 차이점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요? 아는 사람들끼리 하면 아무래도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는 처음부터 ‘공과 사를 구별하자.’라는 생각이 커서, 피드백도 자유롭게 했고 의견조정도 수월하게 했어요. 카톡으로 회의하는 게 아니라 자주 만나서 이야기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도움이 된 거죠. 스트레스 쌓일 일도 없어요. 같이 있으면 워낙 즐겁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하니까요.


     맞아요. 저는 평소에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비등해야 그 둘 다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 공적인 거 막 하다가 사적인 거 조금씩 하면 그게 그렇게 재미있잖아요. 공과 사가 곁들여진 상태여서 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또, 아는 사람이든 아니든 개개인이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관계보다 개개인 역량이 어떤지가 더 중요하죠.  


     저는 팀플에서 거의 리더를 하는 편인데 팀원들의 따라와 주는 정도가 아주 달라요. 저희는 이미 가까운 사이니까 유대감이 크고, 멤버 수도 2명뿐이니까 결속력도 있어요. 그래서 저를 훨씬 잘 믿고  따라와 주죠. 친구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도 있어요. 을 같은 경우에는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서 어떻게 말했을 때 상처를 받는지 제가 잘 알거든요.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말하려고 노력하죠.



듣다 보니 우승을 안 할 수가 없었겠어요. (웃음) 스스로 이길 것 같은 확신이 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저는 을이 한다고 했을 때. (웃음) 두 팀원을 얻고 ‘아. 이거 이기겠네.’라고 생각했는데, 전국대회 때 만났던 강력한 팀이 출전한다는 걸 듣고 약간 무너졌었어요. 그러다가 대회 전날 다른 팀들하고 미리 해봤는데 너무… ‘껌’인 거에요. (웃음)


(일동 경악. 하지만 은근히 동의함)


     그래서 다시 확신이 생겼죠.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은 없었어요. 모든 일에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확신보다는 자신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도 대회를 하면서 (이길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사실 결승전에서… 반대 갑이 입론하는 순간 수상소감을 생각했어요. (일동 웃음) 제가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엄청 놀라운 이유가, 을의 역할 상 확인 질문을 해야 해서 상대편 갑의 입론을 다 받아적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절대 다른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그 와중에.


     저는 대회 중에 펜을 놓고 있을 때요. 연습 때는 아까 말했듯이 한 명이 세 역할을 다 하니까 펜을 놓기는커녕 더 빨리 쓰지 못해서 안달이었거든요. 근데 대회에 나가서는 한 가지 역할만 하면 되니까 쉴 수 있을 때가 와요. 그때 ‘내가 펜을 놓고 있을 수 있다고?’ 싶으면서 ‘우리가 확실히 여유 있구나.’ 그렇게 느껴지죠.


또, 자유토론 시간에 상대 팀이 질문을 하면 “뭐… 저거 누가 받아칠래?” 이런 식으로 마이크를 나눠줘요. 그럴 때도 저희가 우위를 선점했다는 게 느껴지죠.





완전히 만능이 됐나 봐요?


     그게 서로를 믿을 수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준결승전 때 있던 일인데요. 자유토론에서 상대 팀 갑이 말을 하는데 다른 팀원들이 그 사람을 보면서 실수할까 봐 막 조마조마해 하는 거예요. 저희는 다른 사람이 말하면 ‘음. 맞는 소리 하네~’ 하고 자기 발언 준비하거든요.


    그 팀은 완전히 감시체제예요. (일동 웃음) 한 명이 얘기하면 둘이 안달이 나요. 실수하면 자기가 마이크 잡고 바로 얘기하려고. 사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같은 의견이라도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차이가 있고, 차이를 없애도 그걸 말로 해보면 또다시 조금씩 달라져요. 토론이라는 긴장 상황에서는 말이 꼬일 확률이 더 높고요. 그런데 토론이란 게 그런 사소한 말실수들이 결정적이어서… 저희처럼 엄청난 연습량으로 맞추거나, 아니면 감시하거나. (웃음)


    맞아요. 팀끼리 의견이 갈리면 제가 반론할 때, 꼭 지적하거든요. “말이 서로 다른데 어떤 의견이신지 그 부분을 명확히 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희는 한 번도 그 지적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정말 똑같이 얘기해서.



토론대회 우승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때요?


     저희 아버지가 제가 유도대회 나가서 금메달 딴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긴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왜 저걸 좋아하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토론대회 우승을 여러 번 하다 보니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제 자신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건 좋아해도 돼.’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는 대회 참가 사실도 얘기를 안 해서, 바로 우승 이야기를 하니까 다들 놀랐어요. 그리고 약간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어쨌든 다들 좋아하셨죠.


     아는 동기들은 “그럴 줄 알았어. 네가 하지 누가해.” 그런 반응을 해주더라고요. “멋있어.” 그런 말도 해주고요. 뿌듯했어요. 저희 엄마는 전화했을 때 소리를 엄청나게 질렀어요. 감격스러워하시더라고요. (웃음)


아, 대회 중에 전국대회에서 만났던 여자분이 있으셨는데 그분이 저한테 “아니 요번에 왜 이렇게 열심히 하셨어요? 학원 다녔어요?” 막 이랬던 기억이 나네요. 전 항상 이랬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독한 년’이라는 프레임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남자들이 하면 되게 건전한 노력과 대단한 능력이면서, 제가 하면 무슨... 이를 악물고 한 것처럼 비춰지는 거죠.



내년 대회에 또 나갈 의향이 있나요?


     (바로 대답) 네.


     (바로 대답) 저도 있어요.


     … 이건… ㅎㅎㅎ 저를 위한 질문이네요? 저는 사실 전국대회 끝나고 회식할 때도 망설였어요. 지금도 참가 여부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힘든데, 그걸 다른 분들이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병: 서운해!) 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기 때문에 그런 거지, 전국대회 때처럼 두려움이 있거나 자신감이 없거나, 이 팀이 힘들거나 토론이 힘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여성들이 말하는 여성할당제



‘여성할당제’라는 주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사실 전에는 여성할당제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그와 관련된 공약을 내세웠던 것도 몰랐었어요. 그 상태(지식이 없는)에서 주제를 보고 처음 들었던 감정은 ‘걱정된다.’였어요. ‘답이 정해져 있는 거 아닌가?’ 싶었으니까요


     저도 주제는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여성 인권 증진에 대한 찬/반을 시키는 것 같아서, 인권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까 오히려 할 말이 많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주제는 여성할당제라는 제도에 대해서만 찬/반하는 거라 문제도 없었고요.



주제와 관련해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던 건가요?


     그렇죠. 셋 다 여자라서 객관적일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고요. 저는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더 걱정되었죠.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을 때 참지 못할 것 같은데 토론에서는 그게 독이 되니까요. 게다가 심사위원분들이 나이 드신 분들도 아주 많고 남자도 많아서 ‘우리의 논리를 이해 못 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한 팀이 우승이라도 하면 우리는 얼마나 타격감이 클까.’ 그런 고민도 했죠.



이 주제에 대해 실제로 준비해보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나요?


     원래는 엄연히 말하자면 여성할당제에 대해 반대 입장이었어요. 이 제도를 초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거든요. 그런데 병이 그러는 거예요. “왜 여자는 200을 해야 100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100이면 그냥 100인 건데.” 그걸 듣고 정말 ‘맞네. 그렇네.’ 싶었어요. 그러면서 병이 또 덧붙여 말한 게 “제가 200으로 100을 인정받으면 그게 후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잖아요. 너희도 올라오려면 200의 노력을 해야 해. 이런 의미가 되니까.” 그걸 듣고 정말 그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원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다는 차원에서 여성할당제를 찬성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감히 내가 그들에 대해 말해도 될까.’ 이런 생각이 있어서요. 하지만 결국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논제가 완전히 여성 인권 증진에 대한 찬반은 아니라고 해도, 결국 그걸 포함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오히려 이 기회를 잡아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하는 게 내가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론이란 게 논리가 다 까발려지는 거라서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순간이 분명히 와요.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런 순간이 오죠. 그걸 눈으로 확인하면서 ‘아. 이런 대화의 장이 더 많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기회가 있으면 더 소수자의 삶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해요.


     이 주제가 토론 주제로 사용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저에게는 상식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대회를 준비한 남성들에게는 여성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는 이 주제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 거죠.



갑은 토론이 끝나고 주제에 대한 찬/반이 뒤바뀐 거네요. 두 분은 어떠세요. 여성할당제에 대한 입장이 처음과 달라졌나요?


     저는 저에게 득이 되는 걸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찬성이었어요. 그런데 반대 측 자료를 찾아보면서 ‘어떤 프레임에 우리를 가두는 걸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걸 다시 찬성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그걸 여성할당제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51% 정도로 찬성하기는 하지만, 반대 입장이 여성 인권이 아니라 여성할당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양쪽 의견에 충분히 공감해요. 사실 반대 입장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거든요.


    저는 정말 모르겠다는 게 토론을 잘 끝냈다는 증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모르겠어요. 근데 꼭 하나만 정하라면 찬성이에요. 완전히 정답인 길만 갈 수 없으니까.



여성 할당제가 가지고 있는 여성 불평등이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 있었나요?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동의를 안 할 수 없죠. 그런데 결승에서 상대 팀이 ‘그 운동장 자체는 기울어져 있는 거고, 그게 당연한 거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이 대회를 해나가면서, 상대 팀을 만나가면서, 정말 이 사회 전반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동감해요. 하지만 스스로는 이때까지 계속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이제는 생각해보고 싶어졌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동의하고 시작했는데, 자료를 보면서 진짜로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 더 체감했어요. 수치로 맞닥뜨리니까 ‘생각보다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그걸 못 느끼는 게 더 슬퍼요. 여성들이 여성할당제를 역차별이라고 생각한다는 자료가 있거든요. 실제로 갑같이 불평등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예요. 기본적으로는 안타까운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성들에게 되돌아오는 폭력이 될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되게 심각한 문제예요.



반대입장이 말하는 여성의 사회진출은 어떤 방식인가요?


     여성복지 제도의 증진으로 인해 결과적 평등이 아니고 과정적인 평등을 이루는 게 옳다는 의견이죠. 사실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런 (승진이나 취업에 있어서) 장애물을 없애고 동등한 경쟁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고, 어떻게 해서 보이는 장애물을 다 없앴다고 해도 시선적인 문제도 있어요. 어렵고 이상적인 이야기이긴 해요.




# 그들이 가진 역량에 대해



내가 이 팀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말해볼까요? 자기 자랑 시간이에요!


(일동 침묵)


     … 그럼 제가 먼저 할게요.


     한 10분 말하는 거 아니야? (웃음)


     아니야. 아니야. 저는 약간… 그래도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다른 조별을 해보면 사실 팀장들이 팀원을 많이 포기해요. 별로 체계적이지도 않고. 그런데 저는 체계적으로 연습하려고 노력했고, 무엇보다 설득에 대해서 팀원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주제가 예민할 수 있는데, 갑과 을이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은 게 있으니까 (여성이 겪은 불평등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생각보다 잘 알아들어요. 제대로 이해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졌죠. 솔직히 저는 저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이 못 봤어요.


    저는 잘 따라가는 거? 물론 저희가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이끌어 가는 사람에 대해 불성실하면 잘 굴러가지 않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따라가서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팀플에서 절대 불성실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맞아요. 전국대회 준비할 때도 병은 계획 짜는 사람, 을은 열심히 하는 사람, 저는 잘 안 하는 사람. 이랬거든요. (일동 웃음) 제 능력이라고 하면 분위기를 유하게 할 수 있는 거.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개인 능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서로가 더 잘 알 것 같아요. 서로서로 이야기해볼까요?



     갑은 토론 자체에서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에요. 다른 팀이랑 해보면 확실히 비교되거든요. 성량과 발음이 정말 좋아서 전달력이 우수해요. 상대 팀들도 필기할 준비 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발언이 시작하면 일제히 고개를 들어요. 스피치 실력에 깜짝 놀라서요.


     맞아요. 갑이 처음을 맡기 때문에 입론으로 인해 기선 제압되거나, 아예 팀 자체가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서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갑은 신뢰적이고 긍정적인 목소리 톤과 전달력, 인상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그 역할을 잘해줬죠.


    또, 갑이 저희보다 나이가 많아서 동생들이 기죽을 수 있는데, 우리가 하는 말을 최대한 다 들어주고 배려를 정말 많이 해줬어요.



     을은 자신을 굉장히 궁지로 내모는데 그걸 이겨내려고 노력해요. 자신이 생각한 지점에 다다르지 않으면 아무리 그만하라고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심지어는 울면서도 자기 목표를 채우려고 하죠.


갑     을은 전체적으로 투입량과 비교해 산출량이 많은 사람이에요. 특히 자료를 정말 잘 찾아요.



     병은 저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는, 베일을 까주는 사람이었어요. 특히 이번 주제에서 더 그랬죠. 허를 찌르는 능력이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잘 들어요. 잘 듣고 그것에 대한 허점을 찾아서 바로바로 이야기하는 데 그게 전부 다 치명타예요.


    제일 큰 장점은 대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 중에 토론에 임하는 자세가 가장 열정적이었다는 거예요. 그게 참 중요한 게, 저는 좋아해야 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병이 이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이끌지 않았으면 잘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팀장의 역할도 병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면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게다가 교내대회 준비를 하면서 대회 준비 2회차가 되니까 병이 저희를 다룰 줄 알게 됐어요. (웃음)



나 없어도 이 팀이 우승할 수 있었을 것 같은지?


     처음에 팀을 구할 때 원래 저 말고 후보가 있었어요. 그래서 나 없어도 이 팀은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세뇌당한 건지. (웃음) 팀원들이 저를 과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해주니까 저도 ‘아.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못해요! (웃음) 왜냐하면 저희가 각각의 역할에 최적화된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뭐야…(술렁거림)


     아니, 조건이 있어요. 제가 이 대회에 나오지 않고 이 둘이 나왔으면 우승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제가 다른 팀으로 출전했다면 아마 못하지 않았을까요? (웃음) 왜냐면 저는 죽을 때까지 트레이닝을 시켜서라도 제 팀원을 제2의 갑, 을로 만들었을 거기 때문에.



본인이 토론대회에 참가하기 전에도 말하기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나요?


     말싸움을 진 적은 별로 없어서 말을 못 하는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 토론대회를 통해 말하기 스킬 부분에서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갑     저는 좋은 기회로 스무 살 때부터 학원에서 일을 했어서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말하기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항상 논리가 부족해서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을 들었거든요. 그게 토론을 하면서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논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말하려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저는 소질이 있는지 잘 몰랐어요. 그냥 대본을 잘 써서 그걸로 커버친다고 생각했거든요. (웃음) 또, 제가 너무 긴장하는 편이라 ‘잘하고 있나?’ 그걸 판단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토론하면서 제가 평소에 말하는 논리구조와 사고구조가 토론과 정말 잘 맞는 걸 발견했어요. 평소에는 저의 논리구조대로 말하면 사람들은 질책하거나 이해를 못 했는데, 토론에서 써먹으니까 모두가 잘했다고 하는 거예요. 너무 기뻤어요. 써먹을 수 있는 곳을 발견한 거죠.



우승을 한 후에, 내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뭔가요?


     제가 이 중에서 제일 자신감도 없고 의지도 부족했어요. 저는 제가 잘하는 게 좋고 남들한테 인정받는 게 좋거든요. 운동이 그래요. 잘한다고 생각해서 좋아하고, 그러니까 자신감도 있는 거예요. 반면 토론은 그렇지 못했어요. 그런데 우승 사실을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니까 어떤 분이 “일 등을 한다는 게 엄청난 거야.”라고 해주시더라고요. 우승으로 인해 그런 말도 듣고, 내가 잘한다는 걸 체감하게 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겨요. 우승의 맛은 이런 거구나. (웃음)


     저도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전 사실 자존감도 아주 낮고 의심도 많이 하는 성격이거든요. 우수한 결과를 받아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요. 그런데 이렇게 1등을 하니까 ‘내가 맞았구나. 나 원래 이정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저도 자신감이요. 원래도 자신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업그레이드됐다고 생각해요.





다들 토론에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거네요. 그 이외에도 대회 이후에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자신감은 내면적인 거였다면, 실제로 말하는 부분에서도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말끝을 흐리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토론에서 안 좋은 점이라서 고치려고 노력을 많이 하니까 일상에서도 말을 할 때 흐리지 않게 되었어요.


또, 제 말투가 토론에서 사용하는 말투와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평소의 제가 바뀌더라고요. ‘굳이 그렇게 (부드럽게) 말할 필요가 없구나.’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갑      동의해요. 그 실제적인 부분이 다시 자신감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 아니라서 확인 질문을 해야 하는 역할인데 그걸 잘 못 했거든요. 그런데 토론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저에게 생기니까 실제 생활에서도 적용이 되고, 또 그것에 대한 팀원들의 칭찬이나 저의 자각으로 인해 내 역할에 대한 내 능력을 인정받는 차원에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평소 모습과 토론할 때 모습이 많이 다른가요?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분이 실제 토론하는 영상을 찍어주셔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다들 “너 말을 왜 이렇게… 못되게 해?” 이러더라고요.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토론만 하면 사나워진대요. 제 역할이 모든 반박을 다 해내야 하는 완전 공격형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전 그게 제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평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싶은데 못할 때도 있잖아요. 토론에는 그게 없으니까 다 할 수 있어서 되게 저에게 잘 맞는다고 느껴요.


     저는 원래 되게 달랐는데, 요즘 들어서 토론할 때처럼 돼가는 것 같아요. 토론할 때는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발성도 신경 쓰면서 공적인 스타일로 이야기하면, 사석에서는 남의 말도 잘 안 듣고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듣고 이야기하는 것도 늘고… 아, 지적하는 게 많이 늘었어요.


     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석에서 환대받지 못하던 저의 진정한 모습이 극대화된다고 느껴요. 토론할 때의 제가 더 저 같아요. 평소에는 인간관계를 신경 쓰느라 하나하나 지적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토론할 때는 하나하나 다 지적할 수 있어서… 그냥 그게 저예요. (웃음)




# 토론과 페미니즘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자유로운 의견이 듣고 싶어요.


     저는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인식 자체를 바꿀 수 있을지 고민도 많이 해요. 일단은 제 주변 사람들부터 천천히 변화시켜 나갈 거예요. 사실 저희 엄마가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을 하세요. 어릴 때부터 “넌 날씬하게 커야 해.” 그런 말도 많이 하셨고, “너 요새는 왜 치마 안 입어?” 그런 얘기도 하시고. 제가 화장을 안 하니까 엄마가 “너 혹시 페미니즘 이런 거 해?”라고 물어서 충격이었어요. 가족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슬펐죠. 그런데 전 엄마를 바꾸고 싶어요.


     저는 페미니즘 덕분에 제가 혜택을 보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들었던 어떤 강의에서 강연자가 “페미니즘 운동이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았다면 뭐가 남았겠느냐.” 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요. 그걸 듣고 어느 정도 동감을 하면서도, 그렇게 비이성적이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페미니즘을) 조금 더 인간답게 했으면 좋겠다.’, ‘방법을 다 같이 강구해나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은 있죠.


     음… 생각해보면 우리가 실제로 공격적인 게 아닌데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처럼 페미니즘에서도 와전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공격적인 건 아닌데 여성들이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보는 게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여성들에게 그렇게까지 잣대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 전 설득을 하고 싶지, 조롱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때때로 조롱을 하는 걸 발견해요. 개인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그런 식의 발언으로는 발전이 없다고 믿어요. 진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설득이에요.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다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여성에게 위로가 없고 노력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가 많은 것 같아요. 나아가는 건 좋지만 서로 토닥이고 위로하면서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바람이죠.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이나, 내심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이 있었나요?


     미러링이라면서 조롱하는 것.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적이 있었죠. 그래서 그렇게 하는 친구에게 왜 그러는지 물어봤어요. “우리가 당했던 거 똑같이 느껴보게 해야지.” 그러더라고요. 물론 이해는 되는데, 우리가 아기가 운다고 해서 똑같이 맞서서 싸우지 않잖아요. 뭐가 더 효과적인지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요.


     제가 한창 화장하고 다닐 때 어떤 친구가 “화장 왜 해?”라고 물어봤는데 재미있어서 한다고 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네가 정말 재미있어서 하는 게 맞아?”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또, 어떤 영상에서 페미니스트가 화장하는 사람에 대해 굉장히 안 좋게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지금에서야 ‘그렇게 소모적인 행동을 재미라고 생각했다니.’하고 웃을 수 있지만, 처음에는 반감을 품게 됐었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고요.


     탈코르셋에 기준을 자꾸 세우는 게 이상했던 것 같아요. ‘바지가 얼마나 여유 있어야 탈코르셋이야?’ 같은 것들이요. 물론, 이제는 내면의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셋 다 대학생이잖아요. 대학 내에서 실제로 유리천장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저희 과가 여초과거든요. 근데 학회장은 꼭 남자예요. 지금도 학회장이 남자 동기인데, 저희 과 남자 동기가 정말 한 줌이거든요. 거기서 굳이… 집행부에 일 잘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얼마 전에 사회대 학생회 지원 문자가 왔는데 <차장은 남녀 모두 지원, 부장은 남자만 지원> 이렇게 온 거예요. 전 진짜 미쳤나 싶었어요.


    그런데 정정하는 카톡이 다시 왔어요. 그 사람도 실수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뭐 반발이 있었는지, 여자가 이미 너무 많이 뽑혀서 그런 거라는데 그냥 웃기죠. 총학생회장 후보는 한 명도 빠짐없이 남자예요. 그래서 투표도 하기 싫어요.



토론이 공격적인 말하기 방식이잖아요.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말하기 방식이 여성에게 이미 내재화되어있다고 하는데, 토론하면서 실제로 그런 걸 느꼈는지 궁금해요.


     우선 실제로 토론대회를 하면서는 여자들이 더 공격적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현재 여성들에게 그런 방식의 말하기가 내재화되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쿠션어의 사용은 여성들에게만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해요. 여성들이 선천적으로 부드러운 말투를 쓰는 게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여성적 말하기 규범’을 강요받은 거죠. 사실을 사실만으로 보지 않고 그 이면을 봐야 한다는 말이에요.


갑     학장님께서 결승전에 여자밖에 없다는 걸 칭찬하시면서 여자가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를 말씀하셨어요. 사실 전 그걸 듣고 ‘지금 저 사람이 저 말을 왜 하지?’ 싶었거든요.


     여자가 결승전에 올라온 게 특수한 상황이니까 그걸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명분이 필요한 거잖아요. ‘언어능력’이라고 제한하면서 겨우 인정하는 꼴이에요. 그냥 여자가 능력이 뛰어난 걸 수도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남자들만 올라왔으면 그런 말 했을까요? 안 했죠. 남자의 능력은 언제나 존중받아온 것이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공격적인 말하기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때요? 특히 남자의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한데요.


     만났던 상대 팀을 생각해보면, 저희가 안 웃고 냉정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좀 많이 놀라시는 것 같았어요. 잘해서 그랬나? (웃음) 아무리 잘했어도 왜 그렇게 놀랐는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별로 강해 보이지 않나 봐요.


     저는 항상 공격적이라면 공격적인 말하기를 해요. 제가 1학년 때 집행부 생활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선배들과 남자들이 저를 되게 골칫덩어리인 것처럼 눈치를 줬어요. 어떤 부분에 대해 “이거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네가 감히?’ 이렇게 받아들이고 “아이고 우리보다 선배님이다~” 매일 그렇게 농락하듯이 비꼬는 거예요. 확실히 저를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남자가 그렇게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아무도 뭐라고 안 하잖아요. 공격적인 말하기라고 명명하지도 않고요. 단톡방에서 대답할 때도 여자애들은 다 <넹~>, <넴! ^^> 이러는데 남자는 <네> 이래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아, 제가 처음 이 팀을 꾸릴 때 남자 교수님이 “성비가 어떻게 되냐.”고 물었거든요. 여자 셋이라고 하니까 남자를 하나 끼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물론 “낮은 목소리 톤도 필요해서.”라고는 하셨지만 왜 굳이 낮은 목소리가 필요할까요? 높은 목소리는 신뢰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것 자체가 편견이죠. 그리고 과연 목소리 톤 때문만일까 싶어요. ‘남성의 공격적인’, ‘여성의 부드러운’ 말하기 방식까지 고려해서 성비를 맞추자고 하신 거겠죠. 그런데 의아한 게 요번에 교수님이 짜신 팀이 있었거든요. 그 팀은 남자 세 명이었어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하네요.




#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토론대회를 주저하고 있거나, 토론에 뜻이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자신감이 없어도 본인이 열심히 하면,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두렵지 않아요. 결국 두려움을 이겨내는 건 자신감이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노력이에요. 결론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일단, 하면 뭐든 얻는 것 같아요. 안 좋은 걸 얻었으면 타산지석이고, 좋은 거면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 일단 뭐든지 해보자.


    대학 수업을 듣다 보면 발표자로 나온 여성분들이 질문을 받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게 본인이 정말 몰라서 그런 게 아니고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의견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평가될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이요. 반면에 남자들은 실수를 하면서도 말하고 싶어서 난리예요. 그게 나쁘다 생각하지 않아요. 도전 의식을 모두가 가져야죠.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 자신도 일등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대회 전날 그냥 ‘이기려고’ 했어요. 그게 바람직한 건 절대 아니에요.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있는 야망 제일 큰 걸로 말해주세요!


     저는 약간… 돈을 ‘진짜’ 많이 벌고 싶어요.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돈을 그만큼 벌기는 힘들 거야.” 그러잖아요. 근데 저는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돈에 국한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새 주식에 관심이 생겼어요. 원래는 무조건 저금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걸로 큰돈을 벌기 힘들 것 같아서요. ‘돈을 어떻게 하면 잘 굴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주식을 알게 되어서 거기에 사용하고 싶어요.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잘하고 싶어요. 또, 스스로 평가할 때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저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전 ‘모두가 나를 우러러봤으면 좋겠다.’ (웃음) 모두가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도 돈 정말 많이 벌고 싶고…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거 돈 때문에 못 하지 않게. 아, 강연도 많이 하고 싶어요. 그것도 누군가가 저를 원해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게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죠.



이들과 인터뷰하는 동안 내내 느낀 것은 논리적인 대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하는 고민, 나도 모르게 가지게 되는 선입견,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오해. 그것들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유 없는 감정은 미뤄두고 차가운 논리만 가져야 한다고 이들은 이야기한다. 더 이상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어야 한다고, 수만 번의 논리 회로를 거친 후에야 한 마디 주장을 내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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