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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괴물인 것을 알려준 범죄자

by 버팀목

여러분 혹시 수사를 받으러 가시거나 수사를 의뢰하러 가실 때 유념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로 수사관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여태까지 수천 명의 수사관을 교육시켰지만 수사가 뭔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기껏 한다는 대답은 범죄의 증거를 수집해서 공소를 제기하고 유지하는 활동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이는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수사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수사는 형사소송의 절차에 따른 것이고 법원의 입장이거든요. 이 정의에는 단 한마디도 국민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수사관은 형사소송법을 알기 전에 범죄가 무엇이고 형벌은 무엇이며 왜 국가는 개인에게 형벌을 과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가 이러한 수사활동을 하는 것은 범죄피해자를 대신하는 것이지 국가의 고유권한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범죄수사를 보면 피해자는 경찰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는 짜증 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물론 경찰청에서 특진을 걸고 실적관리를 하는 범죄는 없는 것까지 만들기는 하죠)




당연히 저도 똑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꼴랑 경찰대학에서 병신 같은 수업만 받다가 아무런 교육도 없이 수사를 시작했는데 제가 뭘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그 괴물 근성을 알려준 것은 2001년 10월 MBC 우리 시대에서 방영한 '노랑머리 사건'의 범죄인이었어요. 그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2001년 초순경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데 제 옆자리 수사관에게 민원인이 찾아옵니다.


'동네 주민에게 1000만 원가량을 빌려 주었는데 갚지 않았고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노랑머리인 것은 아는데 전화번호도 가짜고 이름도 모른다'는 겁니다.


며칠 후에 다른 수사관이 민원인을 조사하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비슷한 피해였어요.


이상하다 싶어 수사관들에게 용의자가 '노랑머리'라는 사건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다녔어요. 그랬더니 사건이 수십 건이 각자 다른 수사관에게 배당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몽땅 모았어요. 피해자만 수십 명이고 피해금이 당시 돈으로 7억이 넘었어요.


그런데 이 노랑머리는 이름도 가짜고 월세계약서의 인적사항도 가짜고 그때 제출한 신분증도 가짜고 몽땅 가짜였어요.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심지어 최근에 살았던 집에 가서 지문을 채취했는데 지문 한 쪼가리도 남아 있는 게 없었어요.


단서는 단 한 장의 사진이었고 그 사진에는 노랑머리의 남편이라고 하는 자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 노랑머리의 남편은 트럭 운전기 사였다는 거예요.


서울 시내에 등록된 건설업자들에게 몽땅 연락을 해서 그 남편이라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 또한 수배자였습니다.


7개월 정도 이들을 쫓아다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노랑머리를 잡아 구속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유치장에서 연락이 왔어요. 노랑머리가 단식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어쩌라고요. 먹든 말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그다음 날 또 연락이 왔습니다. 3일째 밥을 안 먹고 있다는 겁니다.


그때는 좀 걱정이 되었어요. 노랑머리가 걱정된 것이 아니라 제가 걱정되었어요. 제가 구속시킨 사람이 이러다 죽으면 귀찮아질 것 같았거든요. 결국 그녀를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묻습니다.


"야!(저보다 나이가 3살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너 미쳤어? 네가 뭘 잘했다고 밥을 안 먹어?"


"수사관님 때문에요."


"너 미쳤니? 너 때문에 피해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심지어 이혼한 가정도 있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했다고 "


"그게 아니라 그분들한테는 제가 죄인이죠. 죗값을 치를 겁니다."


"그런데 왜 밥을 안 처먹는데? 그냥 죽게? 죗값은 치르고 죽어야지"


"그게 아니라 같은 방에 있는 여자는 10만 원을 훔쳐서 유치장에 들어왔고 곧 나간데요. 그런데도 담당 형사분이 와서 밥은 잘 먹고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교도소에서 몇 년 살아야 하는데 왜 수사관님은 저한테 와보시지도 않아요?"


미친년이다. 난 단 한 번도 내가 구속시킨 범죄자를 돌이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알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니까 밥 먹어"


그 일을 집사람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난 집사람이 "미친년이네"라고 할 것으로 예상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이 이야기합니다.


"자기가 잘 못했네 그 사람이 자기한테 잘 못한 게 아니잖아 당연히 챙겨봐야지"


충격이었습니다. 난 단 한 번도 그들이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 그들을 잡아들이면서 난 정의를 구현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괴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표를 냈어요. 더 이상 짭새를 하면 정말로 괴물이 될 것 같았거든요.


과장이 말렸습니다. 육아휴직 제도가 생겼으니 일단 휴직부터 하라고 그래서 난 남자 공무원 1호 육아휴직자가 되었어요. 서장이 난테 미친놈이라더군요.


휴직하는 동안 노동을 했어요. 처음부터 다시 민간인이 되는 훈련을 했습니다.


휴직이 끝나고 다시 사표를 들고 경찰서를 갔어요.


이번에는 3기 선배가 날 붙들고 내가 너무 어려서 인생을 모르니 딱 1년만 더 해보라는 겁니다.


그 1년이 24년이 되어 버렸어요. 물론 난 그 이후로 모든 범죄인을 인간으로 대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은 이상 구속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착한 경찰관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후회합니다. 노랑머리에게 충격을 먹고 대범하게 사표를 냈어야 했습니다.


경찰이 되면 괴물이 되기 쉽습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24년 경찰을 한 저는 평범한 시민에 비해 충분히 괴물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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