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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평생 이용당했다.

by 버팀목

멍청하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하는 놈들을 이해 못 했는데 내가 그런 놈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난 평생 남이 싼 똥을 치우는 삶을 살았다.


폭력에 노출된 어머니를 탈출시키고 난 오로지 그 폭력에 스스로 노출되었다.


아버지의 칼에 찔리고 나서야 나도 탈출했다.


그런 아버지를 무참히 폭행한 아버지 친구를 찾아가 대신 짓밟았다.


매일 폭력을 휘두르는 전투경찰대 선임을 말리기 위해 매일 깨어 있었다.


제대하는 선임들이 신참의 예비군복을 삥 뜯지 못하게 하려고 내 돈으로 예비군복을 사서 제대시켰다.


소대원을 자살하게 만든 놈들이 용서받게 하기 위해 일주일간 빈소를 지키고 서대문경찰서 강력팀장에게 사정을 했다.


무식한 어머니는 재혼한 놈에게도 몇 년간 폭력을 당했고 그 폭력을 피하려다 4층에서 뛰어내려 골반이 부서지고 나서야 나에게 털어놓았고 그놈을 잡아다가 유치장에 가두고 이혼을 시켰다.


고등학생이 매월 용돈을 모아 3만 원짜리 학습지를 구독했는데 사기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업체와 계약했던 피해자 3000명을 찾아내어 보상하게 했다.


맹인인 안마사를 속여 그의 전 재산을 빼앗은 조직을 미친 듯이 추적해서 전부 잡아넣었다.


17년간 수사를 하면서 나는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기 위해 집에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요즘 경찰 놈들처럼 승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피해자를 돕기 위해서 일했다.


이 모든 것 미친 짓이다. 정말 병신 같은 짓이다. 나에게 남은 것? 전혀 없다.


심지어 케냐에서까지 이런 일이 발생했다.


A단체의 장이 지속적으로 직원들을 괴롭히고 삥을 뜯고 횡령을 해서 그를 한국에 보내버렸다.


케냐 경찰에게 삥을 뜯길 때마다 밤낮없이 전화를 받았고 모두 해결했어야 했다.


친구의 논문을 대신 써주고, 병신 같고 무식한 후배를 대학원 박사에 넣어주고, 수사가 전부인 줄 아는 김지온에게 경찰청에 가라고 권유해 주고, 그가 가서 일할 수 있게 I2라는 사업 아이템을 알려주고 정보분석 기법에 대해 수시간을 내어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상의했고 그에 대한 대안을 내 일처럼 마련해 주었다. 당연히 보상은 필요 없다. 문제는 그런 나를 짓밟거나 내가 어려울 때에는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은


나는 인생을 헛살았다는 거다.


내 영혼을 팔아 오히려 내 새끼와 마누라만 손해를 봤다.


나의 이 미친 유치한 보잘것없는 생각 때문에 난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아들아 딸아 너 혼자 공부해서 서울대 따위를 못 갈 정도면 공부할 능력이 없는 거야 너희는 절대로 학원을 다니지 마 공부는 공평한 게임이야 돈으로 하는 공부는 비겁한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강요를 해 왔다.


"공부는 너희들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야 남에게 베풀기 위해 하는 거야 그저 돈만 벌거면 사기를 치거나 도둑질을 해 그래도 아빠는 괜찮아"


아이들이 불쌍하다. 이런 아버지를 둔 덕에 모든 기회를 상실했다. 비겁하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 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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