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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가 형벌인 압수수색

by 버팀목

우리나라의 형사소송법은 "법원"이 주체입니다.


형사소송법에는 체포, 구속, 압수수색검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다는 정도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그 이외의 수사방법과 권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수사기관은 사람을 미행하고 촬영하고 잠복하고 추적합니다.


국가권력의 이러한 행위들의 법적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형사소송법은 사람을 체포하는데 수반된 행위쯤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체포 이전에도 수사기관은 미행, 잠복, 촬영 등의 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합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죠. 다른 나라에서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국민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에서 아주 당연하게도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대한민국의 헌법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국가권력은 법적 근거도 없이 사람을 잡아가고 고문을 하고 살인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은 수사기관이 시민을 고문하고 죽이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쯤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이 시민을 미행하고 잠복하고 추적하고 사진을 촬영하는 행위는 모두 인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의 형사소송법은 이러한 행위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수사절차법'의 제정을 주장해 왔습니다. 물론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죠.


시민의 일상생활이 모두 디지털로 변화되고 있고 기업과 국가는 빅데이터라는 환상을 통해 시민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의 애플과 아마존은 국가에서 요구하는 데이터를 과감하게 거부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그렇지 않거든요.


범죄수사는 점점 더 쉬워지고 있습니다. 온갖 데이터가 집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은 항상 볼멘소리로 점점 수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는 공문으로 쉽게 얻을 수 있던 데이터를 이제는 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사기관은 과거에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당연히도 침해해 왔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상대적 어려움일 겁니다.


제가 1998년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강의를 들었던 내용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 수사관 한 명이 은행에 대해 압수수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 은행에 압수수색을 하러 가면 일단, 청원경찰에게 영장을 보여주면서 모든 고객을 다 나가게 하시고 은행 문을 닫으세요. 그러면 아마 지점장이 뛰어나올 겁니다. 만약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든 전표를 전부 압수하시면 됩니다."


20년 전에는 압수수색 자체가 형벌이었어요. 영업장부를 전산으로 관리하지 않던 시절 수사기관이 모든 영업장부와 사무용품 등을 압수해 가면 기업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저는 그때도 그랬지만 현재도 수사기관이 감히 압수수색을 이용하여 형벌을 부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압수수색 일정을 언론에 알리고 수십 명의 수사관이 사무실을 뒤지고 파란색 이삿짐 박스로 들고 나오는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킴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깎아 버리고 뉴스 쪼가리 한 장면을 그대로 믿어 버리는 국민들은 그 대상과 기업에 대해 마녀사냥을 시작하게 되거든요.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모든 피의자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을 이러한 식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진리는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매일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셔야 국기기관이 통제를 받을 수 있고 국가기관에서 과연 헌법상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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