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약 80억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는 많으면 30만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명과 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인간이 침팬지와 같은 수준이었겠죠. 그 속에서의 우열이란 자신이 머무는 집단에서의 서열정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디지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약 80억 명의 양쪽 끝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대략 생각하자면 아마존 밀림에 사는 부족이나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정도가 가장 하위에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가장 상위에는 최고 부자, 최고 권력자 등이 있을 것입니다.
문명과 기술의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지고 '기술 참정권'을 누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저는 기술도 재화나 화폐와 같이 어느 한쪽의 극단, 주로 권력계층이 피지배 계층을 잠식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의심이 듭니다.
정부는 투명해야 하고 개인의 생활은 불투명한 것이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발을 편리하게 해 주는 기계장치는 통상의 시민이라면 그 원리를 알 수 있어 투명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 스마트 그리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이라는 수식어는 알고 있으나 그 작동 원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위해 정책을 만들고 세금을 투입하는 주체는 정부입니다.
통상적인 시민에게 스마트 그리드가 뭔지, 빅데이터가 뭔지, 제4차 산업혁명이 뭔지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일반 시민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게 될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디지털 정보사회를 '암흑상자'에 비유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스마트폰에 비치는 화면과 그것을 터치하는 손끝만을 움직일 수 있을 뿐, 그 뒷단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지요.
마치 눈을 가지고 고속도로로 뛰어드는 느낌이 듭니다.
많은 책들은 스마트폰이나 최근의 기술들이 인간의 지능을 떨어트린다고 주장합니다. 점점 뇌가 사용할 일이 적어지므로 점차 바보가 된다는 뜻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말라거나 카카오톡을 쓰지 말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다만, 기술의 발전, 국부의 창출, 빅데이터 등 프로파간다와 같은 말들을 듣고 무비판적으로 휩쓸리기보다는 더욱더 정신을 차리고 정부와 기업이 평범한 일반 시민들의 감정과 정서를 데이터화하고 이를 이용하여 어떠한 통제를 하거나 어떠한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항상 감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를 사려는 사람은 경제 생태계의 위에 존재하지만 다이아몬드를 캐는 사람들은 가장 비참한 삶을 삽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잔의 커피를 즐기지만 커피 농장의 노동자들은 하루 1만 원 이하의 일당을 받고 일합니다.
태양열 전지,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광물은 여전히 기술의 가장 하위에 있는 사람들이 채굴을 하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낸 문자메시지의 링크를 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불안하시지 않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불투명함의 두려움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