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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산의 일각

by 버팀목

다 아시다시피 빙산의 일각은 바다 위로 드러낸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이죠.


우리가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 역시 빙산의 일각이 되어야 합니다. 평생 동안 경험하고 읽고 듣고 보고 배우고 이해하고 이러한 것들이 겹겹이 쌓여서 심연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가 드디어 나온 생각의 소산이 말과 글입니다.


"바다에 숨겨진 거대한 빙산처럼 지식은 쌓이고 쌓여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표현이어야 한다. 심연의 바닷속에 감추어진 빙산이 없는 표현은 빙산이 아니라 부유물이다."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떠드는 말들이 과연 깊은 지식과 이해의 산물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일관된 생각과 태도를 유지하고 지식을 쌓아서 심연의 빙산을 만들고 있나요? 저는 늘 제가 떠드는 이야기가 부유물일까 걱정합니다.


부유물은 여기저기 떠 다닙니다. 그래서 늘 일관성이 없습니다. 일관성 없는 지식과 목적 없는 삶, 그때그때 달리하는 의견들이 쌓여도 빙산을 이룰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을 공부하고 인권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사를 하고 국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찰을 하는 것들 모두가 부유물입니다.


자식을 대할 때와 밖에 있는 아이를 대할 때, 상사를 대할 때와 부하직원을 대할 때, 자기가 말한 내용과 자신이 실천하는 모습이 다를 때, 원래 그래야 할 이상과 현실이 다를 때는 모두 일관성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관성이 없는 사람의 태도는 모두 부유물입니다.


그 사람의 진정성을 모를 때 우리는 그가 한 말이 빙산의 일각인가 부유물일 뿐인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강의스킬이 좋은 교수는 깊이 아는 교수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보다 경망스럽게 나대는 직원의 성과 평가가 좋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보다 상사에게 굽실거리는 자가 승진을 합니다. 모두가 그들이 부유물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백살이 될 때까지 여러 부유물을 마주쳤고 심지어 그 부유물에 상처를 입고 나니 사람은 늘 겪어 보아야 알게 되더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이므로 내가 그만큼 알지 못하면 상대를 평가할 능력도 안된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배는 빙산의 일각이 보이면 그 아래 숨겨진 빙산의 크기를 가늠하며 좌초하지 않도록 돌아갑니다. 그건데 사실은 본 것이 빙산의 일각인지 부유물에 불과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듣고 본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빙산의 일각인지 부유물인지에 따라 그 말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러한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빙산에 좌초된 것보다 부유물에 상처받았을 때 더 괴롭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어떤 이는 명예를 어떤 이는 여자를 어떤 이는 권력을 탐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하나하나가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돈을 탐하는 이가 청렴이라는 부유물을 버리고 가거나 명예를 탐하는 이가 불결한 부유물을 버리고 가거나 여자를 탐하는 이가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권력을 탐하는 이가 국민을 위한 봉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빙산의 일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그 주위를 한참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부유물이 있는지 확인하시고 부유물이라면 피하지 마시고 무시하고 지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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