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면 좋겠다.

우리는 지나치게 오래산다.

by 버팀목

행복하게 살려면 모르는 게 약일 때가 많다. 내 세상 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짐 캐리가 주연한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은 세트장을 탈출하고 나서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40대가 넘어서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끝에 결국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단지, 인간이라는 고등생물로 태어나서 존재의 이유에 대해 사유할 수 있기 때문에 겪게 되는 과정이라는 점만 겨우 깨달았다.


어머니가 키우고 있는 반려견 '우주'를 보면 그가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 우주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고 항상 즐거워 보인다.


자연상태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우주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캠핑을 즐기는 것처럼 먹거리를 고민하고 불을 피우고 멍을 때리고 바람을 느끼고 고단함을 느끼면 자고 아침 햇살과 새소리에 눈을 뜨고 잠들어 있는 내 강아지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소짓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자연상태를 누리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커피농장에서 하루종일 커피를 수확해서 인건비를 받고 스타벅스로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을 사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는 삶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


현실 세계에서 대다수의 인민들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다수는 비효율적인 노동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본가나 노동자는 모두 태어나고, 먹고, 자고, 배설하고, 사랑하고, 죽는다. 다만, 자본가는 이미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상태에서 고등생물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여유가 있으나 노동자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으로 허비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노동자로 태어난 사람이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생각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당초 없는 '삶의 이유'에 대해 사유하고 탐구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처럼 일생을 불행 속에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명제를 강요하는 것은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을 세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를 "노동이 신성하다"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고등생물이 가진 사유의 능력으로 인해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채)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삶의 이유를 찾다가 '사는데는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처럼 나는 비겁하게도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세뇌를 당하는 선택을 하고 싶다. 기대수명이 80이라면 난 40을 지난 이후 죽어가는 나이이므로 "노동이 신성하다"라는 점을 배척하고 자본가의 길로 접어들기에는 늦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바라는 것과 내 딸과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 다르다.


죽어가는 나이에 접어든 나는 노동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딸과 아들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속박이고 굴레다. 결코 신성하지 않으니 자본주의를 적극 이용하라. 하지만 너희가 욕심을 낼 자본의 총량은 죽어가는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오로지 자연상태를 즐길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서는 안된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얻으면 추해지고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면 추악한 정부의 복지정책에 의지해야 하거나 자손에게 손을 벌리게 되며 결국 인간의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돈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유의지, 자기결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밑거름이다. 나는 노동의 신성함에 세뇌된 채 살아도 되는 나이를 55세로 계산했다. 그리고 실제로 노동이 가능한 나이를 65세로 계산했다. 그 이후 노동이 없이도 우주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노동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특수계급 제도를 없애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