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친구도 없는 내 인생을 돌아봅니다.
저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물론 친구라는 의미를 매우 엄격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필요로 하는 친구는 거울 같은 친구예요.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내가 누구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내가 게을러지고 혹시 철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알려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매일 만나고 수다를 떨 필요는 없어요. 가끔 만났을 때 '너 좀 변했다. 많이 늙었네'라는 것을 알아차려 줄 수 있으면 오히려 낫겠어요.
1991년 영호를 만났어요. 지지리도 못살았던 친구지만 그 영혼은 정말 맑았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의 말투, 태도, 생각은 전부 귀감이 되었어요. 그 친구가 연세대 법학과를 들어가서 투쟁을 하기 시작하고 저는 일명 짭대(경찰대학)를 들어가서 파쇼적인 인간이 되어서도 매주마다 그 친구를 만났어요. 만날 때마다 저는 데모꾼들이 얼마나 나라를 망치는지를 목소리를 높여서 주장했고 영호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저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려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저는 영호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죠.
사실 매일매일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맞는 전투경찰대원들을 보는 저는 데모꾼들이 그저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으로만 보였어요.
그런데 제 머리가 크고 세상이 부패한 것을 직접 목격하고 고위직들이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아는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모든 상황을 이용하는지 알고 나서야 영호라는 친구가 1993년부터 매주마다 이야기해 주었던 말들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2023년의 저에게 영호의 말은 큰 도움이 안돼요. 바보같이 영호가 말해줄 때는 모르다가 수십 년이 흘러서야 알았으니 뭔 소용이 있겠어요.
그 친구는 38살에 간암으로 죽어 버렸어요. 그때까지도 전 영호가 틀리다고 생각했으니 이젠 제가 드디어 깨달았다는 말도 못 해 줍니다.
너무 오래 부패하고 폭력적인 조직에서만 몸담고 오로지 그들과만 어울려 왔으니 저에게 영호 같은 친구를 만날 일은 없었겠죠?
그래서 전 친구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온통 예전의 저와 같은 사람들뿐이니까요.
알지 못하면서 안다는 착각 속에 살았던 나, 고작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고 마구 휘두르며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던 나,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 말은 틀리다고 단정 짓고 밀어내었던 나, 이 오만방자함을 반백살이 되어서야 알았으니 이처럼 바보 같을 수가 있을까... ㅠㅠ, 유비는 내 나이에 천하를 호령했는데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같은 시간을 살면 뭐 하나 그 머릿속 작은 공간에 작은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작은 사람과 위대한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