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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팀목 Sep 13. 2023

사과 10개를 나누어 갖는 법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했더니 빨갱이래요.

강의를 20년 넘게 해 왔지만 가장 어려운 강의는 수사를 오래 해 온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강의 같아요.


수사를 오래 한 사람들은 워낙 간접 체험을 많이 하다 보니 자신이 가장 많이 안다는 착각을 가지고 사나 요. (그래서 수사를 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안하는 것 같아요. 공부를 하려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나머지를 채우는 데 이미 이 세상을 다 아는데 뭐하러 공부를 하겠어요.)


보통 사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가해자와 피해자입니다. 근데 수사를 할 때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 말할 기회와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윽박지르게 도는 사람이 수사관이에요.


저는 면담기법론 강의를 할 때마다 이를 제일 강조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수사관은 하수다. 고수는 항상 말을 듣는다."


해당 사건에서 가장 모르는 사람이 수사관이거든요. 제일 모르는데도 상대방의 진술이 자신이 짜 놓은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으면 짜증을 내기 시작합니다. 보통 하수 수사관들이 이런 태도를 보여요.


여하튼


얼마 전에도 일명 '베테랑 수사관을 위한 심화과정'이라는 강좌에 초대가 되어 강의를 하러 갔어요. 보통 수사관들은 법철학을 배우지 않고 오직 형사소송법에만 몰빵 하기 때문에 법고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와 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쉬는 시간에 어느 수사관이 저에게 빨갱이라고 훈시를 하시더라고요. ㅎㅎㅎ


참 이상하죠. 법의 정신인 자유와 평등과 민주를 이야기하면 빨갱이 소릴 듣는 나라에 산다는 게...


사과가 10개가 있어요. 그리고 10명의 사람이 있어요. 사과를 어떻게 나누는 게 좋아요?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한 사람한테 하나씩 나누어 주겠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과를 2개나 가져갔어요. 뭐 그럴 수 있죠. 배가 더 고프거나 욕심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아홉 명이 8개 사과를 사이좋게 나누어서 먹으면 되거든요.


근데 또 그 욕심꾸러기 녀석이 이 번에는 사과 3개를 먹네요. 그럼 어떤 일이 생길까요?


이번에도 괜찮아요.. 9명이 사과 7개를 나누어 먹으면 돼요. 우리 대부분은 선량하며 너그럽기 때문에 용서의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 녀석이 사과를 심지어 4개나 5개를 가져가도 참을만합니다. 특히 그 10명이 가족이거나 친구 거나 뭐 동료인 경우에는 더욱 그래요.


그런데 아 이 녀석이 이번에는 사과를 9개를 처먹네요. 우와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드디어 이 10명의 사회에는 평등이 무너져 버린 거예요. 1개로 9명이 버틸 수 없으니 그들에게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마저 상실되어 버려요.


이 세상도 같습니다. 법이 없어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은 움직입니다. 결국 법은 선량한 9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욕심꾸러기 녀석 1명을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그것이 권력이죠. 법은 그러한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이 사회는 통제받아야 할 한 녀석이 법으로 권력을 지키고 나머지 9명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법에 대한 잘못된 철학과 인식을 가지게 되면 사회는 무너져 버려요. 이런 주장은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를 해 왔었고 그들의 말대로 이 세상의 역사가 증명해 왔던 거거든요.


복잡하고 다양한 삶 속에서 오히려 더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부디 왜 법이 존재하는지 알고 법을 집행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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