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엄마 상숙 씨와 아직도 싸우는 코드가 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보다 무엇이 되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다.
난 항상 상숙 씨와의 싸움을 회피하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무엇이 되었다고 해석해 주어야만 했다.
1.
"엄마 나 남해로 가기로 했어."
"서울에 있다가 왜 남해로 가는데 남들이 보면 좌천된 줄 알잖아"
"남들이 물으면 지구대장으로 발령 났다고 해"
2.
"엄마 나 서울 안 올라가고 경남에 남을래 여기 너무 좋아, 사람들도 좋고, 바다도 가깝고 행복해"
"엄마 친구들이 너 서울 안 올라오는 게 무슨 사고를 쳐서 그런 거래, 원래 승진하려면 다 서울로 와야 하는 건데 네가 내려가서 안 올라오는 게 사고를 쳐서 그런 거라고 그러는데 너 뭐 숨기는 거 있어?"
"지방경찰청에 스카우트되어 갔다고 해, 그리고 여기서 오히려 총경 승진이 더 쉬울 것 같아서 남는다고 이야기해"
3.
"아들아, 너 승진했다고 여기 이장님이 현수막 걸어준데"
"엄마, 정중히 거절해 그냥"
"아들이 승진한 거 사람들이 알아야 하잖아"
"엄마, 내가 돈 보내줄 테니까 현수막은 걸지 말고 동네 어르신들 식사 대접해"
4.
"엄마, 나 케냐 가기로 했어."
"케냐가 어딘데"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야"
"아프리카? 왜 그런데를 가 미쳤어?"
"남들이 물어보면 외교관으로 간다고 해 아프리카 간다고 하지 말고"
5.
"엄마, 나 경찰 때려치웠어"
"야, 미쳤어 엄마 친구들은 네가 조금 있으면 경찰서장 되는 줄 알아"
"엄마, 댔고 친구들한테는 대기업에 스카우트돼서 간다고 해"
6.
"엄마, 나 회사 때려치웠어"
"넌, 대체 왜 진득하니 일을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남들이 보면 너한테 문제가 있는 줄 알아, 대기업에 스카우트돼서 간 거라 조금 있으면 임원 된다고 이야기했단 말이야"
"고려대학교에 교수로 간다고 이야기해 그럼"
왜 부모들은 자식이 어떻게 사는지 보다 뭐가 되는지에 관심이 많을까?
그건 그저 자기의 허영일뿐이다. 난 판사, 검사, 변호사가 부럽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그냥 법쟁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법은 국민이 만들어 놓은 규칙이기 때문에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딸에게 꿈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아가, 아가는 꿈이 뭐야"
"응... 의사?"
"의사는 직업이지 꿈은 아닌데, 의사가 왜 되고 싶어?"
"그냥 멋져 보여서"
"의사 되려면 공부 잘해야 하는데 만약 아가가 공부를 못하면 의사가 못되고 그럼 꿈을 포기하게 되는 건데 괜찮아?"
"음 그럼 뭐 할까?"
"만약 아프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면 꼭 의사가 될 필요는 없어, 간호사도 경찰관도 소방관도 아니면 부자도 다 도울 수 있거든, 아빠도 꿈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같이 생각해 보자"
되고 싶은 것이 되지 못하면 늘 불만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불만족을 극복하기 위해 능력을 쌓기보다는 주어진 현상을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동기들이 총경에 목숨을 걸기 시작하면서부터 원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인 "국민에 대한 봉사자"의 위치는 망각하게 되고 보살펴야 할 부하직원은 그 차제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한 손과 발로 전락시키게 되는 것 같다.
꼭 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인간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스스로 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그렇게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낮출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의 자존감도 무시할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