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깡통 이관희입니다』

프롤로그

by 버팀목

27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풀옵션 차를 샀다.

998cc 경차인데 온갖 안전장치와 통풍시트, 심지어 선루프까지 달려 있다. 내 수준에서 생애 최초로 호사스러운 선택을 했다. 그런데 사실 난 빈 깡통이다. 뭔가를 가져 본 적이 없었고 가져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난 그저 차는 ‘굴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언제나 중고 깡통차를 타 왔고 평생 깡통차처럼 살아갈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평생 내 철학을 존중하고 따라와 준 내 아내를 위해서 비록 경차지만 풀옵션의 호사를 누리게 해 주었다. 일단 빈 깡통 이관희를 위해 몇 문단을 할애해 보자.


거의 반백년 전 서울 사글세 방구석에서 만 18세였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상숙 씨가 나를 낳았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해에 알코올 중독자였던 내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우리 상숙 씨를 먼저 탈출시키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겨울, 가출을 감행하여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모든 어린 시절을 폭력과 가난 속에서 허덕거리는 삶을 살았는데 당시 정부와 경찰은 우리 같은 불쌍한 서민을 갈취하고 폭행하는 집단이었다. 평소 내 눈앞에 보였던 경찰은 내가 가장 경멸하는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경찰대학을 간 것은 그곳이 공짜로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오래 전의 일을 후회할 필요는 없지만 나의 무지함에 의한 결정이 평생의 삶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천명에 깨달았어도 앞으로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중요하긴 하다.


1993년 2월 경찰대학 정문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3학년이 될 때까지 폭력을 당했지만 ‘국가’, ‘충성’, ‘선민의식’을 반복적으로 주입받다 보니 나 역시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아버지, 경찰관이 되어 있었다. 말 한마디에 후배들이 벌벌 기는 모습을 볼 때의 우월감, 내 호통에 피의자들이 고개를 숙일 때 느끼는 우월감, 범인을 체포할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 탁상공론과 실적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만든 한두 장 짜리 기획서를 경찰서 직원들에게 뿌려댈 때 느끼는 해방감, 이 모든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나를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었다.


내가 했던 짓들이 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진짜' 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한 이후이다. 나의 교수님들은 매일매일 공부를 하셨으며 수십 년을 공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잘 몰라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셨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경찰청장에게 대하는 태도와 학부생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똑같았다. 그간 내가 봐왔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내 선배들, 내 상사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배움의 재미를 느꼈다. 경찰대학에서는 전혀 맛보지 못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를 느꼈고 경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존중과 배려와 평등을 맛보았다. 결국 뜻하지 않게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10년 만에 겨우겨우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감사하게도 '진짜' 대학교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원을 수료한 이후의 조직 생활은 정말 숨 막히고 끔찍했다.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온갖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 수뇌부의 유치 찬란한 행태, 한국대사관에서 국제협력, 국제기구 등을 담당하면서 보아온 대통령과 장관, 국장, 국회의원, 외교관들의 모습, 경찰청에서 형사소송법 초안을 만들면서 매일 겪게 되는 경찰청장의 폭력, 경찰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알게 된 내 모교의 실체 모두가 날 숨 막히게 했다.


개발도상국의 청장들도 호텔을 직접 예약하고 혼자서도 밥을 먹고 회의에 참석하면 말만 잘하던데 왜 경찰조직의 지휘관들은 직원들이 써주는 ‘말씀자료’ 없이는 외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걸까? 서기관급에 불과한 경찰서장은 왜 취임사를 자기가 직접 안 쓰고 경무계 직원이 써 줘야 하는 것일까? 국제회의에 참석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으면서 대체 해외 출장은 왜 가는 것이며 그럴 때마다 직원들이 노예처럼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여러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여러 나라의 외빈들을 접수해 보았지만 직원이 써 준 그놈의 ‘말씀자료’를 보고 읽는 회의 참석자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우리나라의 대사, 우리나라의 경찰 고위직뿐이었다.


일선의 경찰관들은 목숨을 내놓고 일하면서도 멍청이들이 싼 똥(승진을 위한 Red tape, 실적 채우기용 정책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놈의 대한민국 정부 조직은 계급만 좀 달면 숨만 붙어 있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게 너무 꼴 보기 싫었다. 결국 사표를 내고 대기업에서 2년 남짓 고액 연봉자 생활을 맛보기도 하고 음식 배달도 해보고 상하차 작업도 해보고 현재는 맘껏 지껄이고 맘껏 떠들어도 눈치 보지 않는 곳에서 지내면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불쌍하게도 아니면 자유롭게도 난 특별히 꿈이 없었고 지금도 꿈이 없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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