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할 때 항상 던지는 질문이 있다.
"오래전부터 어른을 공경했던 이유가 뭘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부분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이라 답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면 난 항상 이렇게 서두를 꺼낸다.
"저는 어른을 공경했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칙에 의해 지식을 쌓을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는 나이가 들어 어른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쇄기술이 발전하고 저장기술이 발전하고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에는 더 이상 어른은 지식의 원천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경험칙에 의존한 지식은 낡은 것이 되어 버리고 아집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어른으로서 공경을 받고 싶다면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겸비해야 합니다."
이런 거창한 말을 던져두고 결국 '수업 잘 들어라'는 무언의 협박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던진 이 말은 제 진심입니다. 정보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기하급수적으로 정보의 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경험이 특별하지 않은 이상 지식으로서 큰 가치는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와 같이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는 세상에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관통할 수 있는 지혜와 철학이 필요한 때라고 봅니다. 아무리 많은 역사가 쌓여서 공유되면 뭐 하겠습니까? 그저 금세 잊힐 뿐만 아니라 불과 수십 년 전에 겪은 역사가 되풀이되어도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지난번 글에 언급한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을 일으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던 루소가 힘없고 억울한 삶을 사는 대중의 입장에 서서 글을 썼기 때문에 현재의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지식인은 누구인가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시국선언을 하다가 안기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던 교수들은 어디에 있나요?
지성을 대표하는 대학의 총장과 교수들이 뻔뻔한 얼굴로, 명백히 표절인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발표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지식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두는 그저 직장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정 지식인에게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힘없고 억울한 대중은 스스로 지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지식의 핵심을 관통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에 대해 항거하고 다치고 목숨을 잃었던 이들은 요즘 말로 중딩, 고딩이었습니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학력, 재산, 인맥, 종교, 성별 등은 더 이상 지식인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양극화된 정당의 편향된 의견도, 극보수나 극진보 언론의 말도, 정부 인사의 말들도 모두 정보의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양심에 근거한 상식을 가지고 있으면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양심에 근거한 상식만 있어도, 현재의 상황이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