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개를 흔드는 수사 中
경찰대학을 입한 한 후 1기 선배인 지도실장이 했던 훈계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너희들은 소주를 넣은 냉면사발을 원샷할 수 있어야 해"
"왜냐! 그래야 국회의원을 상대할 수 있다."
경찰관이 짠(웃기지 않은가? 대학 커리큘럼을 교육학 전공자가 아니라 경찰관이 설계하는 것) 커리큘럼대로 4년간 60명이 한 반에서 고등학생처럼 교육을 받았다. 밤 늦게까지 받은 얼차려 때문에 외부 대학에서 출강하는 교수님들 수업시간은 취침시간이었다.
매년 10월이 지나면 수업을 듣는 대신 다음 해 2월에 있을 졸업식 행사를 위한 분열 훈련을 받았다.
경찰대학은 1년에 한 번 대통령이 오는 졸업식을 위해 존재한다. 그 졸업식에서 학생과 학부모는 대통령을 위한 병풍일 뿐이다.
그 추운 졸업식 날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다가 웅장한 악대의 음악에 따라 분열을 하고 대통령에게 온 몸을 다해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칠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벅찼다. 진심으로 대통령과 국가에 대해 충성을 맹세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어리석고 미친 놈이다. 새장 속에서 내가 새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변해갔다.
졸업하자마자 전투경찰대 소대장을 했다. 당시만해도 집회, 시위에는 항상 죽창,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난무했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했지만 우리도 대학생들에게 참 많은 폭력을 행사했다. 4년간의 파쇼적인 경경찰대학 교육 후 2년 동안 학생과 시민을 ‘적’으로 대하던 나는 수사관이 되었다.
조사계로의 첫 출근, 수사가 뭔지도 모르고 법도 뭔지도 모르는 놈 책상에는 인수인계서도 없이 100여 건의 사건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매일 3-4건의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았다. 어떠한 교육도 없었으며 어떠한 지시도 없었다. 나에게 수사를 받을 국민은 내 수사경력을 위한 마루타가 되는 것이었다.
피조사자들은 내가 무식한 걸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들은 늘 '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망나니의 칼자루를 잡았다. 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면 그 사건은 100건이 넘는 사건 속 어딘가에서 뒹굴다가 언젠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사건이 너무 많아 고소인에게 전화도 못 할 지경이었다. 그저 고소인이 알아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고소인이 찾아와서 읍소한다.
“형사님, 제 사건 잘 부탁드립니다.”
“이거 사건 많은 거 안 보이세요? 그리고 이 사건 죄가 안 될 수도 있어요. 설사 죄가 된다고 해도 증거가 있어야 하는 거니까 필요한 증거 정리해 오세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찔러보기 수법이다. 찔러봐서 상대의 반응에 따라 조치가 다르다.
일단 민원인에게 사건이 안 될 것 같다고 찔러본다. 민원인이 착하고 순진해서 내 말을 믿으면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만약, 민원인이 그 자리에서 내 갑질을 받아 치거나 주변의 아는 경찰관을 통해서 부탁을 하거나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오면 그 사건은 처리해야 할 사건이 되었다.
난 수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물론 1999년의 일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난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사서비스가 그때보다 나아지지 않았다는데 내 손가락을 걸겠다.
경찰 고위직들은 자기들의 안위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국민들에게 어떠한 서비스를 하고 그러한 서비스를 하기 위해 어떠한 능력을 키워야 할지 큰 관심이 없었고(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경찰관 중에는 정말로 똑똑하고 훌륭하며 깨끗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항상 공부하며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고 실무자를 위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경찰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아니 100만 번을 다시 태어나도 우리나라와 같은 현실에서는 고위직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100년, 만 년이 이 지나도 이러한 현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검사, 검찰청 수사관, 특별사법경찰 모두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검사는 하늘 높으신 양반들이고 언제 짤려도 먹고 살 수 있고 심지어 변호사로 나갔다가 조용해지면 검사든 판사든 아니면 대기업의 법무그룹장도 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수사를 권력으로 이용하여 정치까지 하기 때문에 개인 하나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대통령까지 죽이는 수사를 했는데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다. 통제를 하려 들었다가는 언제 사라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도전하는 수는 점점 줄어든다.
2004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검찰수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사람은 총 83명에 이른다. 수사관들에게 묻고 싶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수사의 대상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라면 한 사람의 시민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다는 중압감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검찰수사의 관행에 대한 설문에서 검찰의 수사 관행 전반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76.1%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검찰 조사 시 피의자에 대한 검사의 태도에 대하여 인격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 68.9%로 매우 많았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견해가 78.8%였으며 검찰 수사의 구체적인 문제로 권위적인 태도, 자백강요, 비인격적 태도, 장기간 수사, 조력 침해 순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수사와 조사는 권력작용이 아니라 서비스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경우든 범죄의 피해를 봤든 그건 그 사람들의 일생에서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수사나 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인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겸허하고 따뜻하고 똑똑한 수사관, 내부감사인은 그들의 쥐꼬리만 한 권한만으로도 사람을 돕고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2009년 5월 23일 새벽, 검찰의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저에 있는 컴퓨터에 짧은 유서를 남기고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였다. 그는 새벽 5시 무렵, 죽음을 앞둔 사람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짧고 정갈한 문체의 유서를 남겼다. 그의 글에는 침착함과 여유가 느껴졌지만 유서의 첫 머리에서 그가 받은 고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2023년 우리나라의 수사 관행은 마치 100여 년 일제 식민시대 헌병경찰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국민들이 이러한 수사 관행을 정상적인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한 이러한 관행은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