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2006년인가 2007년인가 꽤 오래전이다. 사이버범죄 국제심포지엄인가 뭔가라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선배 한 명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디지털포렌식 분야 전문가이며 미국에서 시행하는 디지털포렌식 자격증 시험에도 합격한 인물이라고 소개하였다.
'디지털포렌식'이라는 말도, 미국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도 정말 간지가 쩌는 대목이었다.
난 당시 만해도 디지털, 포렌식, 영어에는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에 그 선배가 하늘처럼 보였다.
호시탐탐 그와 단 둘이 대화할 틈을 보던 중에 마침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에게 다가갔다.
"저, 선배님 저 아까 뵀던 이관희라고 하는데요. 디지털포렌식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쉽지 않을 걸, 너 전공이 법학 아니니? 그리고 영어는 할 줄 알아?"
"네 영어는 전혀 못해요."
"쉽지 않아 그냥 하던 거나 해"
"근데 선배님이 땄던 그 자격증은 공부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시험도 영어로 보는 거고 컴퓨터를 모르면 아무나 안될 거야"
"아 그렇구나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날 이후로 영어, 디지털, 공학, 컴퓨터 이딴 것은 꿈에도 꾸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느닷없이, 뜬금없이, 황당하게 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아 대체 이 조직은 인사를 어떻게 하는 거지? 사이버의 'ㅅ'도 모르는 나를 그 자리에 앉히다니 으 개 망함'
IP가 뭔지 MAC이 뭔지 악성코드가 뭔지, 해킹이 뭔지, 대체 수사관들이 가져오는 서류도 이해할 수도 없었고 특히, 디지털포렌식분석관이 떠들어 대는 소리는 개소리인지 고양이소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속 부정쟁이는 '멍 때리고 도장만 찍다가 나갈까?'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의 긍정쟁이는 '고생이 되더라도 컴퓨터 공부를 해 볼까?'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의 중도쟁이는 '일단, 디지털포렌식 자격증 수험서부터 사서 봐봐 안되면 말고'
그 선배 놈이 합격했다고 뻐기던 미국 디지털포렌식 자격시험부터 응시하니 외계어로 된 두꺼운 책이 배송되었다.
두 달 만에 합격했다. 이 시험? 글 만 영어로 되어 있을 뿐 그냥 한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같은 거였다.
컴퓨터? 인간이 설계한 것이다 보니 인간이 생각하는 거와 같은 거였다.
'개새끼, 이렇게 쉬운 걸 지만 처먹으려 한 거였구나!!'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자문을 구하는 옛 동료나 후배가 많아졌다.
내 대답은 늘 똑같다.
"하고 싶으면 해 봐 넌 할 수 있어"
"에이 다들 안된데요. 인사고과 점수를 양을 받으면 시험 잘 봐도 안된데요."
"그거 다 뻥이야 원래 뭔가 이룬 놈들은 잘난 척하려고 남들한테는 어렵다고 이야기해 인사고과 점수 낮으면 한 문제 더 맞히면 돼"
"한 문제 차이가 아니라던데요."
"그럼 다 맞혀 그럼 돼, 시험에 떨어진 놈들은 다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법이고 그런 놈들은 늘 인사고과만 잘 맞았으면 붙었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그리고 시험에 합격한 놈들은 자기가 대단하다고 떠벌리고 다니고 싶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거야 개의치 마"
결국 돌아오는 대답이 늘 한결같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처음이에요. 선배처럼 하라고 하는 사람"
"너 시험 본다고 합격한다는 보장 있어?"
"아니요."
"너 시험공부를 시작하지도 않고 시험을 합격할 수 있어?"
"아니요"
"시험공부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게 쉬워?"
"아니요"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 줘도 그걸 할지 말지 결정하는 사람은 너야, 결국 공부를 하는 것도 너고, 투쟁을 하는 것도 너야 그런데 처음부터 할 수 없다고 하면 네가 하겠니?"
"아니요"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어도 그것을 할지 말지, 그리고 하더라도 성공할지 말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대체 인간들은 특히, 이미 이룬 인간들은 자기가 이룬 것을 남들은 이룰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시도를 하는 사람의 의지와 희망을 꺾어 버리는 걸까?
이러한 태도는 특권의식의 출발점이다. '나는 되고 너는 안돼', '너는 그저 개돼지 같은 시민이고 난 통치자야', '넌 항상 가난한 게 맞고 난 부자인 게 당연한 거야'로 귀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