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
그노시 시에프톤이라고 발음하는 이 문장은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그리스어이다.
배움 이전에는 반드시 무지, 모름에 대한 인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지, 모름에 대한 인정을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능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비어있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내 조직과 대학을 비판하면 열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라도 하면 난데없이 카톡이나 문자나 전화가 온다.
어떤 놈은 "내리는 게 좋겠어", 어떤 놈은 "내려라", 어떤 놈은 "너 그러면 감찰에서 찍어서 표적감찰할 수도 있어" 등등 노골적인 협박까지 하는 놈들이 있다. 100% 경찰대학 졸업생들이다.
그중 한 친구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문젠데?"
"네 말이 맞지만 그걸 인정하면 내가 쓰레기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기분이 든단 말이야"
충분히 공감한다. 어떤 느낌일지.
경찰의 부패나 비위에 관한 뉴스 기사가 나오면 나조차 늘 화끈거렸다.
같이 뉴스를 보는 집사람이나 딸아이가 "정말 저래?"라고 물으면 "아니야 어느 조직이나 문제 있는 인간들이 있잖아 다 그렇지는 않아"라고 애써 내 조직을 감싸왔다.
케냐에 발령을 받고 첫 공관 직원 회식자리에서 첨 보는 코이카 사무소장 놈이 나를 자꾸 "짭새"라고 불러서 몇 번을 참다가 "자꾸 그러면 아구창이 날아가는 수가 있으니 적당히 합시다."라고 하기까지 했던 나다.
그런데 아픈 곳을 자꾸 건드릴 때마다 짜증을 내기보다는 아픈 곳을 치료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내 똥꼬가 가렵고 피가 나면 창피하다는 이유로 숨기고 참기보다는 어쨌든 내 똥꼬를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보여 주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내가 즐겨 쓰는 문장이 있다. “쪽팔림은 한순간이다”, 1999년부터 2002까지 3년간 나를 괴롭혔던 똥꼬를 ‘상쾌한 아침 항문외과’ 선생님께 보여 주고 나서야 난 배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1990년대 초반 유명한 작가의 책에서 “대안 없는 비판은 불평불만에 불과하다”는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는 이 말을 자주 인용하면서 대안을 없이 현 상황을 비판하는 것을 무척이나 경계해 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말은 “입 닥쳐라”는 소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직 생활을 하면서 상사와 회의나 토론을 한 적이 없다. 명목은 모두 ‘회의’나 ‘토론’, ‘간담회’ 따위였으나 100% 지시였다. 간담회가 정말 간담회인 줄 아는 순진한 직원이 한마디 건의라도 하면 상사는 발언자에게 대안을 요구하기도 하고 회의가 정말 회의인 줄 알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라도 하면 그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이 업무를 맡아야 했다.
다들 어디서 ‘brain storming’과 ‘critical thinking’을 주워 들어서 뭔지는 알고 있으나 이를 실천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회의 문화는 ‘brain storming’에 ‘critical thinking’으로 응대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시가 brain storming이라면 즉각적인 비난과 대안의 요구, 비판은 critical thinking이다.
불평불만이든 대안 없는 비판이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나라에 강물처럼 흐르지 않고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썩어버렸다.
“대안 없는 비판은 불평불만에 불과하다”는 구절이 옳다는 나의 진부한 생각을 박살 내 준 것은 후배였다.
함께 경찰수사연수원 교수로 근무할 당시 원장은 회의 때마다 참으로 병신 같은 이야기만 해 댔다. 원장이 병신 같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후배는 손을 들고 반대의견을 제시했고 그 때문에 회의 시간은 길어져만 갔고 원장의 이야기가 병신 같은 걸 아는 모든 교수들은 회의가 끝나면 후배 때문에 회의가 길어졌다는 책망을 하기에 급급했다.
어느 날 후배가 나에게 묻는다.
“선배 원장님 말에 동의해요?”
“아니, 병신 같은데 왜?”
“근데 왜 자꾸 원장님 말씀하실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려요?”
“야! 계급만 경무관이지 평생을 저렇게 산 놈인데 우리가 뭔 이야기하면 알아는 들을 것 같니? 그리고 끄덕거리고 동조해 줘야 병신 같은 회의가 빨리 끝날 거 아니니”
“선배, 저 병신 같은 이야기가 그냥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원장이 지시한 대로 이행을 해야 하고 그러면 교육생들한테 영향이 가는 일이잖아요.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해야 맞는 거죠. 말하지 않을 거면 그냥 가만히라도 있어요.”
“알았다. 약속하마 원장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고개라도 끄덕거리지 않을게”
난 바로 다음 날 회의에서 후배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오랜 세월 갑들에게 굽실거리고 살아온 인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그날 저녁 회식 중 도망 나온 나를 따라 나온 후배는 나에게 소리쳤다.
“씨발 왜 그렇게 비굴하게 사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씨발이 뭐냐”
내가 되받아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 윗사람의 말이라면 그저 고개부터 끄덕이는 인간, 변화를 바라면서 변화를 이끌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 인간임을 처절하게 인정하고 부패, 불공정과 불평등에는 늘 저항하고 행동하려고 노력 중이다.
몇 년 후 그 후배가 나한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선배가 나보다 백배는 더 지랄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