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지랄치미가 되었을까?

by 버팀목

어제 보령에 상숙 씨를 보러 갔다 왔다.


"야 아들, 너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점점 성질도 자주 내고 흥분도 잘하는 것 같아"


오늘 오후에는 원장님을 만났다.


"이 박사가 지난번 준 원고를 봤는데요. 너무 감정과 분노가 섞여 있어요. 힘을 빼세요. 전문서적으로 낼 거면 비판적인 내용은 많이 줄이면 좋겠고, 대중서로 책을 낼 거면 의견을 적지 말고 스토리를 쓴 다음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게 어때요?"


두 분 모두 애써 내 감정을 배려하느라 에둘러 이야기를 했을 뿐, 모두 '너 지랄치미야'라는 충고를 한 셈이다.


난 언제부터 착한 아들에서 지랄치미가 되었을까?


마치 사회적 사춘기가 온 것 같다. 중고딩 때 겪지 않았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게 아닐까 싶다.


몇 년 전부터 내가 상처를 받을 때마다 원장님께서 초지일관하시는 말씀이 있다.


"이 박사가 바라는 인간상은 실제 존재하지 않아요. 다들 모순 덩어리이고 이기적인 게 보통이에요. 필요하면 찾다가도 필요가 없으면 버리는 게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사람에게 기대를 하지 마세요. 좋을 때는 친구지만 돌아서면 남입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씀도 아니다.


난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계급이 높아지고 나이가 들면서 평균적으로 더 나쁜 사람들 속에 살아왔을 뿐이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수백 명의 동료와 함께 일을 하는 동안 가끔 부패한 동료는 본 적이 있었지만 인간성이 나쁜 동료는 단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었다.


내 지랄침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그 시작은 2014년임이 틀림없다.


2014년 1월 덜컹 승진을 하고 나서 두려웠다. 경찰서로 나가면 수사과장이나 형사과장을 해야 하는데 지휘해야 할 사람들이 적게는 40명에서 많게는 60명이다.


'나같이 어린 조무래기가 형사들을 지휘한다고? 정말 미친 짓이다. 도망가자'


그래서 도망을 간 곳이 경찰대학 로스쿨팀이었다. 전국 25개 로스쿨에 경찰학 과목을 론칭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를 지랄치미로 만든 이벤트 몇 개를 생각해 냈다.


1. '일단 론칭해!'


로스쿨에 경찰과목은 없었다. 교재도 없었고 가르칠 교수도 없었다. 커리큘럼 세팅, 교재 개발, 교수 양성 등 할 일이 많아 짧게는 1년을 생각했는데 경찰청에서는 '당장 다음 학기에 론칭해'가 지시사항이었다.


정말 무식했다. 왜 일을 이렇게 할까? 경찰청에서는 그저 '25개 대학 경찰과목 론칭'이라는 한 줄 보고용으로만 생각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들어가는지 그 향후의 효과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장기적 안목은 없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가 재직 중일 때 한 줄 써넣을 실적으로만 생각하는구나!!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같은 편을 설득하고 싸우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는 반이 넘었다.


2. '서울대 출신이 강의합니까?'


25개 로스쿨을 돌아다니면서 설명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꽤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는 서울대 로스쿨 학생과 교수진을 모시고 설명회를 했다.


끝나갈 무렵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그럼 경찰에서 서울대 출신이 와서 강의하는 겁니까?"


(속으로) '아 미친놈 여기서 왜 맥락 없이 서울대 타령이지? 저 자식은 그럼 하버드생 만나면 어쩌려고 저러지?'


대답했다.


"서울대는 아니지만 경찰 중에는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석박사들이 많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좀 배웠다고 하는 놈들의 선민의식을 직접 목도하기 시작했다.


3. '감히 경찰이 서울대를 들어와?'


각 로스쿨을 유랑하고 다니면서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경찰위원회 위원까지 했던 서울대 X 교수가 같은 팀 연구원에게 전화를 해서 항의를 했다.


"감히 경찰이 서울대를 와서 강의를 한다고요?"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데 왜 저런 무식한 놈이 서울대 교수까지 하면서 온 나라 욕을 먹이는 걸까?


좀 배웠다고 하는 놈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4. '감찰은 청장의 지휘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로스쿨에 가서 강의를 시켜야 하니 욕먹으면 안 되었다. 전국의 경찰관 중 석박사 출신들을 모조리 모았다.


57명이 지원을 했고 그중 7명을 추려내야 했다. 혹독한 선발절차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달랑 3-4명이었다.


3-4명 중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변호사 자격과 진짜 학문과는 차이가 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최소 7명은 되어야 25개 로스쿨에 강의가 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 다양한 분야에서 근무한 경찰관을 추가로 선발했다.


이렇게 예비 교수 10명을 추려냈고 그들을 한 달 동안 숙식을 하면서 훈련시키다 보니 많은 토론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중 경찰청에서 감찰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형 감찰의 역할이 뭐예요?"


이때, 충격적인 답변을 들었다.


"청장의 지휘권을 확보하는 거지, 말을 안 듣는 사람을 조지는 거야 그래야 말을 들어"

째려봤다.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 봤다. 속으로 생각했다. '쓰레기 같은 새끼, 파쇼적인 놈, 저런 게 내 후배의 모습이구나, 저 놈은 분명 높이 올라가리라 그리고 거기서 결국은 떨어지리라'


4-5년이 지난 후 그는 갑질, 성희롱 논란으로 경찰을 퇴직했다.


항상 실무만 담당하면서 민원인을 상대해 왔고 그 이후에는 교육기관에서 강의만 했던 터라 몰랐다.


그런데 2014년 한 해 동안 경찰청과 로스쿨, 그리고 나름 경찰 내에서 똑똑하다고 하는 놈들을 모조리 모아서 일하면서 난 점차 지랄치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2015년 케냐로 도피를 했다. 거기서는 더 큰 왕 지랄치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글이 길어지면 나도 힘들고 독자도 힘드니 오늘은 지랄치미의 서막에 대한 이야기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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