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줄이는 방법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by 버팀목

학교폭력 때문에 난리다.


학교폭력을 없애는 방법(정확히는 줄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첫째, 학교를 안 보내면 된다.


둘째, 교실을 없애면 된다.



1. 학교를 안 보내면 되는 방법에 관하여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


아이일 뿐인 나는 아버지의 말은 당연히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단 두 문장 때문에 나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선생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학교는 왜 가는 것일까?


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

나. 선생에게 맞기 위해?

다. 의무교육이기 때문에?


친구는 학교보다는 놀이터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된다. 선생에게 맞기 위해 학교를 가지는 않는다.

학교를 가야만 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의무교육 제도 때문이다.


의무교육은 아동의 사회화, 한 국가의 백성으로 살아 가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시대 서당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만 있으면 세상 모든 지식을 쓸어 담을 수 있다.


학교가 좋다면 당연히 보내면 된다. 하지만 학교에 가는 것이 괴롭다면, 학교에 다니면서 폭력을 경험해야 한다면 학교의 더 이상 그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학교를 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2. 교실을 없애는 방법에 대하여


초등학생은 언제나 보살핌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정환경에서 떨어져 나와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혼란스럽다.


당연히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보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생에게 담임 선생님은 엄마이고 아빠이다. 그래서 교실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그런데 중학생, 고등학생에게 교실이라는 장소적 제약이 필요할까?


20-30명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다른데 아이들은 한 교실에 앉아서 선생을 선택하지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어떤 아이는 선생님의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의 수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교실에서의 수업은 어떤 아이의 수요도 충족하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수학 상, 수학 중, 수학 하를 가르치는 3명의 선생님 강의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나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 나를 때리지 않는 선생님의 반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다양한 인간이 한 공간에 있으면 반드시 서열이 발생한다.


교도소 감방에 있는 사람들도 그 공간에서의 서열이 발생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은 교실에 등교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집, 커피숍, 도서관에서 각자 강의를 듣기 위해 좋아하는 선생님의 강의실로 들어가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자유가 있다.



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이러한 제도가 매우 당연하다.


과연 우리 정부가 이를 모를까?


모르면 괜찮다. 하지만 알면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의도가 있거나 나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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