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벌에 환장한 나라

모든 권력을 의심하라

by 버팀목

어제저녁 홀로 학교 옆 순대국밥 집에서 3,900원짜리 국밥과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혼술을 하다 보니 텔레비전을 마주하고 앉았는데 어느 때와 다름없이 '누가 뭔 죄를 지었다.', '법원이 누구를 구속했다.'라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뉴스 보도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온통 사람을 잡아들이는 뉴스뿐이다.


종일 뉴스를 보다 보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은 온 나라의 정의를 이루는 집단쯤으로 착각하게 된다.


지금 나는 도서관에 쭈그리고 앉아서 빈프리트 하세머 교수가 쓴 책의 번역서를 보고 있다.


원서의 제목은 원래 “왜 형벌이어야만 하는가”이고 배종대 교수님이 "범죄와 형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저자는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형벌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 통합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맹목적이고 국가편의적인 수단으로 전락하여 인간을 경멸하고 인간사이의 연대성을 부정하는 괴물로 변질될 수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의 형벌은 오래전부터 맹목적이며 국가편의적인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확신한다.


국가가 내리는 형벌이 국민에게 주는 혜택은 무엇일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를 당했다고 치자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형벌은 피해자에게 어떠한 도움과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인민이(요즘 국민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 나라의 국민인 게 참 창피해서 인민이라는 말을 쓰자)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강간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면 난 우선 그 범죄자를 찾아 죽이고 싶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태원에서 압사를 당했다면 이를 방치한 경찰청장과 대통령과 구청장을 죽이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인민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사기를 피해를 당하게 되면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것은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나의 나체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 유포된 사진을 삭제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결국 형벌 자체는 나에게 어떠한 행복감과 도움을 주지 못한다.




범죄에 대한 형벌이나 이를 위한 수사, 그 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이 부분에서 국가의 역할은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의 정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의 예방에는 관심이 없다.


범죄가 없으면 범죄를 예방했다는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범죄를 예방했다는 것은 뉴스나 영화거리가 안된다. 애초에 발생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를 잡는 모습은 참 그럴듯하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 수사물은 있으나 범죄예방물은 없다.


검찰이 원래의 역할인 소추보다는 수사와 구속과 압수수색에 환장을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출을 위한 것이다.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경찰권은 수사권이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는데 필요한 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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