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무게가 있네요

by 버팀목

말이나 글이 같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똑같은 말도 말하는 주체에 따라 무게가 달라져요.


"주권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주권은 일반의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힘인데,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국가의 행정권을 맡길 때에도 주권은 여전히 국민에게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면 모든 국민이 제비 뽑기로 하루나 일주일, 한 달 정도씩 돌아가며 대표를 맡는 것이겠지만, 다들 바쁘기 때문에 가장 똑똑하고 성실해 보이고 일반의지를 잘 대변할 것 같은 사람 한 명을 뽑아서 정해진 기간에 한해 열심히 일하라고 행정권을 맡긴다. 그런데 이처럼 행정권을 맡길 때에도 주권까지 맡길 수는 없다."


사회계약론을 통해 루소가 한 말을 김성은 님께서 다시 정리하신 글이에요.


루소는 1700년대에 이 글을 썼어요. 그런데 이 글을 제가 인용하면 저는 '좌빨'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최근 안보수사국 수사팀장 강의를 할 때 이런 글들을 몇 개 인용했더니 쉬는 시간에 어느 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강사님 말이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꾸 그런 말 하시면 좌빨인 거예요."


나 같은 사람이 던지는 말의 가벼움을 알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생각을 말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강사로서, 교수로서, 그리고 친한 지인으로서 진짜 내 생각을 이야기할 때에 이러한 피드백을 받으면 참 절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늘 생각합니다.


'나와 말할 기회가 있는 사람들조차도 공감하는 말을 하지 못하는데 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비상식을 보고 이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때,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적 의문을 품고 원래 그래야 하는 원칙을 이야기하려 하면 늘 완전히 똑같은 벽에 부딪힙니다.


"다 맞는 말이지만 이상적이야. 현실은 안 그래"


우리가 배우고 철학하는 이유는 현실을 이상과 비교하면서 이상과 멀어져 있는 현실을 이상과 가깝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방치하려면 그저 아무것도 안 하면 됩니다.


어제 당초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집사람의 권유로 "퀸메이커" 1회만 보자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하루 만에 전편을 시청했습니다. 배우들이 하는 말들과 연기에 최소한 5번을 펑펑 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드라마에 적극 공감합니다. 그러니 흥행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현실에서는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악'에 대해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걸까요?


퀸메이커에서 선거를 포기하려는 오경숙 후보와 황도희 본부장이 논쟁을 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오경숙 후보는 자신이 믿는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선거를 포기하려고 하고 황도희 본부장은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선거를 포기하는 오경숙을 답답해합니다.


나중에 황도희 본부장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오경숙에게 감명합니다.


'오경숙이 가진 진짜 힘은 단 한 사람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구나'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열 사람 중에 8명이 나쁜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열 사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중 단 두 명만이라도 좋은 생각을 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 두 명 중 한 명이 나쁜 생각 쪽으로 돌아가 버리는 순간 좋은 생각을 하던 마지막 한 사람은 더 이상 생각을 공유할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집단에서 완전히 매장될 것이 뻔합니다.


내 말의 가벼움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항상 내 말의 무게를 측정해 주고 이를 애써 무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점점 외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 말아야겠어요.


시간을 내어 애써 정리하고 맞춤법 검사를 해서 글을 올리는 것은 공감해 주는 이가 있기를 바라는 것인데 언제나와 같이 이러한 애씀은 나라는 사람이 하는 말의 가벼움을 증명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내 말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라고 생각하며 사는 편이 심플해 보입니다.


그저 강단에서 말을 팔아서 돈 버는 데에만 집중하면, 현실적이며 가까운 사람을 잃을 필요도 없고 좌빨이라는 소리도 들을 이유가 없어지니 모두가 이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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