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가 생각납니다.

by 버팀목

"곽영호" 어렸을 적 제 유일한 친구였는데 불혹의 나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그 이후 사실 전 영혼을 같이 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영호를 처음 만난 건 1990년이에요. 같은 반 친구였는데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죠.


재수 없게 저희는 입시 특별반인 1학년 1반에 들어갔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로 앞을 채우고 나머지는 떨거지들로 채웠는데 하필 저희 둘이 그 반에 들어간 거죠.


선생님이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니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형벌을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졸기라도 하면 선생님한테 따귀를 맞을 때라 잠도 못 자고 버텨야 했어요.


저나 영호나 참고서를 살 돈이 없어서 나머지 공부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선생님들한테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요. 선생님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공부를 잘하거나 잘 사는 집 애들만 이뻐하셨죠.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를 잘하려면 돈이 많아야 했으니 결국 돈이 많은 애들을 이뻐해야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어느 날 학교에서 과학부라는 서클을 새로 만든다는 공고가 떴습니다. 과학부에 들어가려면 과학시험을 봐야 했는데 웬일인지 영호가 관심을 보였고 우리 둘은 과학부에서 내는 시험을 치렀고 나란히 합격해서 과학부원이 되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과학부에 들어온 친구들은 저희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교 탑을 달리는 사람들이었고 회장과 부회장을 맡은 선배들은 모두 전교 1, 2등을 다투던 사람들이었어요.


천재들 사이에 바보 둘이 들어간 셈이죠.


영호랑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야 어쩌냐, 대체 우리 둘이 합격한 이유가 뭐지?"


"야 우리도 공부를 해 볼까?"


"그래 일단 해보자"


그날 이후로 영호랑 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클 활동도 매우 열심히 했어요. 당시 선배들은 과학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무엇이며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설명해 주었고 독재정권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과학부에 들어온 사람들은 80% 이상이 서울대를 들어갔던 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 회장이었던 선배는 늘 이렇게 말했어요.


"난 반드시 서울대를 갈 거야 그래서 자유로울 거고 투쟁을 할 거야"


과학부 선배들 때문에 저는 대학을 가는 것은 투쟁을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선배들과 후배들이 제 친구였죠.


그런데 이 모든 이들을 잃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필 경찰대학을 간 거예요.




당시 과학부 선배는 이미 서울대 의대를 진학했었는데 나중에 제가 경찰대학을 가게 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관희야 넌 왜 그 많은 대학 중에 시민을 짓밟는 대학을 갔니, 앞으로 너와는 같이 할 수 없겠다."


제가 경찰대학을 진학했다는 이유로 저는 훌륭한 사람을 모두 잃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친구는 영호뿐이었습니다.


영호는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갔어요.


저는 외출할 때마다 영호를 만났습니다. 사실 만날 때마다 싸웠죠.


만날 때마다 PD가 어쩌고 NL이 어쩌고, 자유가 뭐고, 평등이 뭐고, 자본주의의 문제가 무엇이고, 독재가 어쩌고, 파쇼가 어쩌고, 철거민들이 투쟁을 왜 하는지 등등 제가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였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영호한테 그랬죠.


"야 이 빨갱이 새끼야 넌 대학 갔으면 사법고시나 준비해서 나중에 나 같은 짭새한테 술이나 사"


영호는 2학년이 되던 해까지 매일 데모 현장을 돌았고 군대를 다녀와서 졸업할 때까지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데모만 했습니다.




영호는 졸업한 이후에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계속 2차에서 낙방을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호에게 책을 사주는 정도로 도왔어요.


1차 시험에만 4-5회 합격했을 뿐 2차에서 낙방만 하던 영호는 갑자기 연락을 끊었습니다. 7년이 지난 후 다시 연락이 왔더군요. 사법고시는 포기하고 공인중개사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저한테 미안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다시 연락이 된 후에 1년도 채 안되어 영호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호가 죽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영호가 빨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도 저는 평범한 짭새에 불과했거든요.


그 이후 대학원을 다니고 책을 읽고 논문을 쓰고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어린 영호가 저에게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면 계속 지껄였던 것들이 모두 진리라는 것을.....


만약 영호가 아직 살아 있다면 저는 그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1993년 영호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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