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찰대학 13기니까 선배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 많은 선배들 중에 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선배가 세 분 계십니다.
그중 돌아가신 1기 선배님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합니다.
풍채가 호랑이라 참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분입니다.
제가 사이버수사대장으로 발령이 나서 수사과장으로 모셨습니다.
그분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우리 때는 모든 경찰관들이 돈을 먹었어. 돈을 먹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려웠던 때니까, 물론 나도 돈을 먹었지,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 사람도 항상 바뀌어야 하는 거야."
처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고위직 경찰관들은 자신은 온갖 부패를 저질렀으면서도 취임식에서 늘 이렇게 이야기하죠.
"여러분 경찰관은 깨끗해야 합니다. 부패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여러분, 절대 인사청탁하지 마세요.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불이익을 주겠습니다."
순 개뻥입니다. 경찰청장이 인사청탁을 안 받는다구요? 만약 안 받는다면 제 목을 내놓겠습니다.
여하튼, 그 선배는 거짓과 꾸밈이 없었습니다. 그 점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신문 하나를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 신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장래가 촉망되는 한국인 교포가 있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도 유명한 의사였는데 어느 날 그의 스승에게
"모국으로 돌아가 봉사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스승이 극구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포 의사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며칠 후에 그의 스승이 물었다.
"자네 어디로 갈 셈인가?"
"아산병원, 서울대의료원 등을 생각 중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자마자 스승이 극노하면서 꾸짖었다.
"자네는 배운 사람의 자세가 안되었네. 자네가 가고자 하는 병원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좋은 병원 아닌가. 남이 이미 일구어 놓은 좋은 곳에 가서 호강하겠다는 것이 자네가 말한 봉사란 말인가? 자네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네"
이후 교포 의사는 크게 깨달음을 얻고 건국대학교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건국대학교 병원을 현재와 같이 유명한 병원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선배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우리의 사명은 남이 가고 싶은 곳에 비집고 들어가서 호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남이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기꺼이 가서 그곳을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드는 거야"
잠깐 나눈 이 대화는 평생 저에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자리를 탐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그 선배에게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