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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by
버팀목
May 24. 2023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가 살아 있다면 퍼붓고 싶습니다. 날 왜 낳았냐고!! 나를 왜 이렇게 키웠냐고!!!
직장에서는 비굴하고 집에서는 폭력을 행사한 이중적인 인간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식도 팔 수 있다며 가정은 자신의 도구일 뿐이라고 날 세뇌시킨 인간
너무 가난하여 매일 쌀을 한 되씩 사 와서 입에 풀칠을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술은 마셔야 했던 인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내게 위인전을 사준 것을 알고 어머니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던 인간
남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되는 것이라며 공부할 기회조차 날려 버린 인간
중학교 때부터 매일 그를
죽이는 상상을 했습니다.
결국, 그로부터 도망을 간 곳이 재수 없게 경찰대학이었어요.
그를 원망할 이유는 많지만 가장 원망스러운 것은 날 경찰대학으로 도피하게 한 것입니다.
짭새가 되는 길을 내가 선택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습니다.
1997년 9월 27일 사실 저는 아버지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가 죽어 주었거든요.
저는 그의 죽음을 저에게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를 먹여 살리느라 저는 경찰대학 재학 중에도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졸업여행도 못 갔어요.
4년 내내 토요일에 집에 가면 일주일치 반찬을 차려 놓고 왔어야 했습니다.
졸업 후 첫 해인 1997년 9월 초순 집에 갔더니 저에게 50만 원을 달라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97만 원이었는데 50만 원을 달라는 거였어요. 현금을 뽑아 와서 짜증스럽게 50만 원을 주고 전경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주에 경찰서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었어요.
소식을 접하고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이미 시체 안치실로 옮겨졌고 방에는 검은색 양복과 와이셔츠가 걸려 있었습니다.
제가 온갖 짜증을 내며 건넨 50만 원으로 제가 입을 상복을 사두고 죽은 겁니다.
그의 죽음과 그가 남겨 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던 상복을 보며 아버지를 용서하고 잊었습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지금 따져 묻고 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경찰대학을 갔고 짭새로 24년을 허송세월을 보냈고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하는 반백살이 되어서야 내가 얼마나 무식한 지 깨닫게 되었다"라고 원망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땀 흘려 번 돈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오손도손 살고 싶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아내를 만나 아이들도 착하게 자라주었지만, 저는 24년 경찰공무원을 하면서 제대로 가정을 돌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무식하고 폭력적인 조직을 위해 헌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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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인 나이에 고작 깨달은 것은 '나는 미완이구나'입니다. 그래도 '미완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청년이며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글귀가 좋아 글을 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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