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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risee Mar 08. 2024

나를 찾아가다 : 버지니아 울프

여기 상처받은 한 사람이 있다.


'여성은 학교를 다닐 수 없다.'는 사회적 통념에 의한 상처.


의붓오빠들의 성적 학대로 인한 상처를 흉터로 안고 살았던 사람.


그러나 그 상처 속에서도 단단하게 자기 자신의 재능을 뿌리내리고, 자기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기 위해 살아갔던 사람.


결국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작품, 자신의 글로서 기억되고 인정받고 있는 사람.


바로 '버지니아 울프'이다.


여성으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버지니아는 어떠한 삶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인간 '버지니아 울프'의 삶이 보여주는 '나다움'과 '사랑'은 무엇인지 함께 들여다보자.






1. 상처와 한계를 극복하는 삶


버지니아에게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처이자 한계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교육과 사회생활의 기회는 극복할 수 없는 단단한 벽이었던 것이다.


옥스퍼드 인명사전 제작에 참여한 문학 평론가 아버지, 화가들의 모델이었던 어머니를 둔 꽤나 유복한 환경.


당대의 유명 화가와 지식인들과 교류할수록 간절해진 더 넓은 세상, 더 넓은 지식에의 갈구.


때로는 오늘은 당연한 것이 어제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다.


여성이 무언가를 배우고, 재능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어제'의 버지니아는 그 시간 속에서 좌절과 한계를 느꼈으리라.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상처 외에도 버지니아는 그 삶의 모든 순간 잊지 못할 상처 또한 경험한다.


어린 시절 의붓오빠들이 가한 성적 학대는 버지니아의 삶 전체를 할퀸 상처가 되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데 큰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렇게 버지니아의 삶에는 얕고 깊은 각각의 상처와 한계가 존재했다.


어떠한 상처는 영영 아물지 못할 것처럼 보이고, 어떠한 한계는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상처와 한계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독학으로 영국 고전과 빅토리아 문학을 공부하고, 훗날 일부 교육의 문이 열렸을 때에는 런던 킹스칼리지 여성부에서 다양한 언어와 역사를 공부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은 모습은 '블룸스버리 그룹' 활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모더니스트 예술가와 문학가들과 모여 지식을 나누었던 모임에는 당대의 걸출한 문학가인 에드워드 포스터, 그리고 경제학의 천재로 알려진 '존 케인스'가 함께했다.


당대의 걸출한 남성 지식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버지니아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더불어 여성에 대한 글을 쓰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버지니아는 성별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처와 한계를 벗어던진다.


물론 그 한계와 상처를 온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버지니아의 모습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존경과 경이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상처와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프게만 느껴지는 상처를 외면하고, 한계를 수용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기꺼이 나로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비록 고통스러웠을지언정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던 버지니아의 삶은 우리에게 다시금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전,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쌓아 올린 버지니아의 나날들이 그 시간 자체로, 그리고 그 시간을 담은 글을 통해 더욱 마음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2. 사랑 :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혼자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하기도 하고, 사랑을 받는 시간 속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통해 '나'를 찾아가고, 누군가의 '자신'을 찾아주는 의미 있는 자아의 실현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버지니아 또한 사랑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뿌리내리는 힘을 얻어나갔다.


버지니아의 재능을 알아보고,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지원한 남편 레너드.


무려 8년간의 청혼 곁에 버지니아와 부부의 연을 맺은 그의 사랑은 버지니아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울타리이자, 상처와 한계를 극복하게 해 준 사랑이었다.


레너드와 함께 버지니아의 삶을 그녀답게 해 준 또 한 명의 인물은 같은 여성 작가인 비타 섹빌이다.


여성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마주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고, 작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했던 두 작가는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고, 서로를 보듬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마음의 공유 또한 가히 사랑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관계는 상처와 아픔을 남긴다.


하지만 어떠한 관계는 나를 나로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나누는 사랑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자신답게 만드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사랑 속에 자신을 찾아갔던 바지니아의 삶을 통해 삶의 관계 속에서 사랑으로 스스로를 찾아가고, 사랑으로 누군가의 스스로를 찾아줄 수 있다면 그 삶은 그리 불행하거나 아프지만은 않은 삶이리라 생각해 본다.





3. 당신의 삶이 책 제목이라면?


버지니아가 남편과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자택.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당신의 삶이 책의 제목이라면 무엇인가요?"


지금까지의 삶이 한 권의 책이 된다면, 그 제목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장르는 무엇이며, 지은이는 누구일까?


버지니아는 우리 삶의 저자가 우리 자신이기를.


삶의 한 챕터에 고난과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내 삶의 저자는 나 자신, 책의 장르도 '나 자신'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 반짝이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책을 멋지게 써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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