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년 넘게 핸드드립 홈카페를 즐기며 다양한 원두를 마셔왔다.
게이샤는 물론, 게이샤는 아니지만 대회에서 수상한 고급 원두들,
그리고 스페셜티 카페에서 추천하는 다양한 원두들까지.
맛있다는 건 거의 다 마셔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라는 세계를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졌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지금은 커핑 수업을 듣고 있다.
커핑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원두를 준비해 주셨다.
게이샤급 고급 원두부터, 4등급 정도의 원두까지.
우리는 매 수업마다 점수를 매기고, 항목을 체크하고, 선생님과 비교하며 감각을 정돈해 갔다.
처음에는 엇나가던 점수들이 점차 전문가들의 기준과 가까워졌다.
이제는 스페셜티와 그렇지 않은 원두, 심지어 게이샤급 원두도 비교적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나를 계속 물고 늘어진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왜 이건 맛이 없는데, 정말 게이샤라고?"
그 계기는 게이샤였다.
평소와 같이 커핑을 하는데 한 커피가 너무 찡하고 먼가 텁텁한,
그래서 나의 점수는 78점도 미치지 못했다.
선생님은 원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알고 보니...
게이샤였다...
그것도 비싼....
운 좋게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신 분 덕분에,
생두 1kg에 15~16만 원이나 하는 고급 게이샤 원두를 선생님이 직접 로스팅해 주셨다.
내가 알던 게이샤의 맛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걸까.
평소처럼 “와, 향 너무 좋다” “이게 케이샤지!” 같은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딘가 순간 공기가 조용해졌고, 누구도 쉽게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다 한두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음... 향이 좀... 독특하네요?”
“바디는 그래도 괜찮은 것 같아요...”
장점을 억지로 끌어내듯, 어디 한 구석에서라도 좋은 점을 발견하려는 말투였다.
그리고 선생님도 마침내 입을 떼셨다.
“아, 이건... 시간이 지나면 더 맛있어질 거예요.”
나는 게이샤를 처음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로스팅된 게이샤를 마셔봤고,
때로는 감탄했고, 다시 마시고 싶어질 만큼 인상 깊은 커피도 많았다.
물론 선생님의 말에도 공감은 했다.
실제로 나도 로스팅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가장 맛있다고 느꼈던 경험이 많았고,
진공 포장 기계를 사용하고 있기도 해서 그런지, 1년이 지난 원두도 여전히 훌륭한 맛을 내기도 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말, 그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커피는, 그 모든 이론과 기대를 뛰어넘어 단순히 내게 맛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 순간의 솔직한 감각이었다.
그런데 이 고가의 생두로 내린 커피는,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텁텁하며 찡한 맛을 내는 원두였다..
그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처음 마신 게이샤가 이 커피였다면, 난 게이샤를 싫어하게 됐을지도 몰라."
그게 바로 로스팅의 힘이었다.
같은 원두여도, 누가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커피의 맛은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로스팅이라는 작업은 쉽지 않다.
가열 시간, 배출 타이밍, 뉘앙스, 기계 컨디션, 생두 상태…
그 모든 게 복잡하게 맞물려 하나의 ‘맛’을 만든다.
그걸 알기에 선생님이 노력하신 것도 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마신 그 커피는,
게이샤라는 이름을 기대하며 마신 사람에게 실망을 줄 수 있는 맛이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봤다.
왜 나는 커핑 초반에 자꾸만 점수를 낮게 줬을까?
그 원두가 나빠서가 아니라,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맞지 않음’의 많은 부분이 로스팅에서 기인했다는 걸,
지금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 ‘절대적인 원두 평가’라는 관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가 볶았는지, 어떻게 추출했는지보다는 원두 자체의 포텐셜을 보는 연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팅이 전부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계속 아쉽게 다가왔다.
나는 커핑 수업을 통해,
이제는 로스팅에 대해 배우고 싶어졌다.
단순히 흥미의 문제가 아니다.
정말 로스팅이 어렵고 복잡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아직 나에게 감춰진 감각의 층위가 더 있을까?
커피의 본질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커핑 수업은,
이제 또 하나의 관문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로스팅을 모르면, 진짜 커피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