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커핑 수업.
총 4개의 원두.
익숙한 흐름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늘 소소한 자랑과 함께 묘한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2번과 3번 그룹은 처음부터 맛이 비슷했다.
에티오피아 계열일 거라는 짐작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산미가 둥글게 감돌았다.
처음 점수를 매길 땐 아주 세밀하게 평가했다.
2번은 81.25점,
3번은 81.75점.
0.5점 차이였고,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미묘한 차이를 구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마음속에 불안감이 일었다.
‘설마... 이게 에티오피아 G4 원두는 아니겠지?’
예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G4 원두를 찾아보겠다는 심리로 무리하게 점수를 준 적이 있었다.
그 경험 때문일까. 오늘은 상대적으로 점수를 맞추려는 의식이 들었다.
혹시 같은 원두라면 2점 이상 차이 나면 안 된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고쳐 썼다.
2번은 80점,
3번은 81점.
그냥 무난하게.
그렇게 내 점수표는 조금 더 ‘안전한’ 평가표가 되었다.
아주 깔끔하고, 아주 무난한, 평균적인 숫자들로 정리된 결과물.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한 마디 던지셨다.
"2번 하고 3번은 같은 원두예요."
그때 학창실절이 생각났다.
‘아, 괜히 고쳤다 꼭 고치면 고치기 전이 정답이더라...’
그대로 뒀다면 더 정확했을 텐데.
처음 매긴 81.25점과 81.75점이 차라리 솔직하고 진심이었다.
상대적으로 평가하려는 ‘좋은 학생 심리’가 결국 진짜 나의 감각을 덮어버린 셈이다.
그 아쉬움은 고스란히 1번 원두로도 이어졌다.
처음엔 제법 맛있었지만, 식고 나서 마시니 뭔가 이상했다.
분명 수정이 필요했지만, 2번과 3번에 너무 많이 집중하다 보니
힘들어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거 알면서도 귀찮아 그냥 그대로 제출했다.
그리고 그 1번이 G4 원두였다는 걸 알고 나서,
나는 다시 한번 절대적 평가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정말 커핑은, 상대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구나.’
오늘 수업의 두 번째 파트는 추출 실습이었다.
선생님은 각자 다른 원두로 1차, 2차, 3차 추출을 해보라고 했고,
이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장 맛있는 한 잔을 내려보는 미션이 주어졌다.
선생님과는 다른 원두 분쇄를 하고 냄새를 통해 찡하고 쇠맛이 날 거 같은 원두.
향에서 또 직감이 들었다.
그 찡한 쇠 맛을 줄이는 게 핵심이었다.
첫 번째 추출은 선생님의 ‘매뉴얼 방식’을 기반으로 했다.
3차에 찬물로 희석해 쓴맛을 조절하려고 했고,
묽지 않게 조심하면서 단맛을 끌어내려했다.
그런데 단맛이 부족했고, 원두가 가진 본연의 매력이 희미했다.
두 번째 시도는 내가 평소에 즐겨 사용하는 추출 방식으로 도전했다.
평소에는 전기 드립포트를 쓰지만,
학원에는 일반 드립포트라 원하는 물 온도를 맞추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추출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특유의 찡한 쇠맛을 최대한 줄이고,
마무리 맛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1차는 뜸을 충분히 들인 뒤, 온도는 90도에서 시작.
2차는 난류를 일으키며 단맛을 끌어내고,
3차는 찬물을 소량 넣어 온도를 낮춘 후, 중앙에 가볍게 푸어했다.
쓴맛을 정리해 ‘한 모금 더 마시고 싶은’ 맛을 만드는 것.
그게 나의 추출 철학이다.
그 결과, 내 커피가 오늘의 1등이 되었다.
수강생들이 다 같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했고,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커피가 내 작품이었다.
선생님도 칭찬해 주셨고, 소정의 상품도 받았다.
기분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내 안에 계속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왜 내가 가지고 있는 스페셜 커피는 1년이 지나도 정말 맛있는데,
왜 여기서 먹는 로스팅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스페셜 커피에서 찡한 쇠맛이 날까?”
오늘 사용된 원두는 게이샤는 아니었지만 스페셜티였다.
수강생들이 내려도, 선생님이 직접 내려주는데도 불구하고,
추출을 잘해도 찡한 맛이 여전히 강하게 남는다.
나는 계속해서 겪는 이 경험은 결국 같은 결론으로 돌아온다.
커핑을 하면서 추출을 하면서
나는 계속 ‘로스팅’이라는 궁금증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그 커피가 ‘맛있는 스페셜’이 될 수도,
‘찡하고 이상한 커피’가 될 수도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느꼈다.
내가 로스팅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다.
이제 더는 피하지 않으련다.
점수를 고치지 않았더라면,
맛을 덜 무시했더라면,
그냥 좀 더 솔직했더라면.
다음부터는 어떤 평가도,
내 혀와 직감으로, 처음 느낀 그대로 쓰겠다.
그리고, 그 느낌을 직접 내 손으로 볶은 원두로 확인하는 날이
곧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