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나는 오늘, 나를 닮은 향으로 커피를

커피여행

by Woo seo
ChatGPT Image 2025년 4월 19일 오후 02_12_22.png

2화 《커피는 향으로 나를 닮아갔다》

게이샤를 마신 이후, 내 감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진 그저 커피를 “쓴맛, 단맛, 산미” 정도로 구분하며 마셨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컵을 입에 대기 전, 향이 먼저 나를 흔든다.
그 향이 오늘의 기분과 어울리는지,
내 안에 있는 감정과 닿아 있는지를 먼저 느낀다.


처음에는 단순히 ‘향이 좋다’ 정도였다.

그러다 점점 세분화된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잘 익은 복숭아, 감귤 껍질, 화이트 와인, 구운 밤, 쟈스민, 말린 꽃잎…

그 모든 향이 그날의 내 감정처럼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커피를 ‘향으로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몰입하기 시작했다.


같은 원두도 추출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향이 난다.

물 온도, 붓는 속도, 뜸 들이기 시간, 그리고 내가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향에 영향을 줬다.




그래서 추출은 이제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행위’가

되었다.



조금 더 높은 온도에서 단단한 향을 살리기도 하고,

천천히 부드럽게 내릴 땐 섬세한 꽃향기가 피어났다.

내리는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감정을 다듬는 것 같았다.


물을 부을 때 손의 힘을 빼고, 김이 올라오는 찰나를 지켜보고,

한 모금 내리기 전, 향이 퍼지는 그 찰나의 공간까지도 감각이 깨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컵까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둥글고 얇은 립의 유리컵이 어울리는 향이 있고, 작고 도톰한 머그에서 더 깊게 퍼지는 향도 있었다.

얇은 잔에서는 상큼한 산미가 먼저 튀어나왔고, 두꺼운 컵에서는 묵직한 단향이 오래 남았다.



나는 원두에 따라 컵을 골랐다.


향에 따라 그날의 기분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싶었고,
결국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감정 연출이 되어갔다.




요즘은 커피를 내릴 때

‘이건 나에게 어울릴까?’

먼저 생각한다.



이 향은 오늘의 나와 잘 어울릴까? 이 추출 방식은 내 감정에 부드럽게 닿을까?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물을 붓는다.



향은 내게 점점 더 많은 말을 걸었다.

마치 음악처럼, 날씨처럼, 표정처럼.

커피 한 잔에 담긴 향은 그날의 감정과 기분을 비추는 작은 창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향이 뭔지 몰랐던 나에게, 하나씩, 향으로 대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추출은 그저 도구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감정을 찾아가는 한 장면이 되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르지만, 향으로 스스로를 닮아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1-5화 향으로 기억되는 커피, 게이샤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