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하나를 위해 달린 새벽 길 위에서

by Woo seo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4일 오전 11_52_46.png

불을 배우는 길 위에서, 서울로 향하다

로스팅을 배워 납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표 앞에는 두 가지 벽이 있었다.


첫 번째는 기술.

아직 나는 불을 다루는 손이 미숙했고,

납품을 한다는 건 그 이상의 ‘일관성’을 요구했다.


두 번째는 장비.

납품용 로스터기는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게다가 200g·300g짜리 작은 로스터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그래서 내 선택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납품보다는 온라인 판매를 목표로 삼기로 했다.

크지 않지만, 그래도 1kg는 roasted 할 수 있는 로스터기.

내가 감각을 담아 기획하고 로스팅하고,

누군가에게 ‘향’으로 전달할 수 있는 로스터기.


그런 장비를 찾기 위해 요즘은 매일 밤

유튜브와 사이트를 뒤적이며

스펙을 비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격증보다 중요한 것, 그러나 욕심나는 고급 강의

SCA 초급과 중급까지 배우고 나니

슬슬 ‘고급’이 눈에 밟혔다.


왜냐면 나는 기술보다 ‘이유’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니까.

불을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

공기를 왜 지금 열어야 하는지,

그래프가 왜 그렇게 꺾이는지.


그 ‘왜’를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강의가

바로 고급 로스팅 강의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문의를 했다.

“고급 자격증, 들을 수 있을까요?”
저번에 이야기를 했는데...
네? 무슨 말인가요?
저번에 문의하신 분 아닌가요?
처음 문의 드립니다.
초급과 중급 로스팅 배웠고 자격증은 취득하지 않았지만 고급 자격증은 관심이 있어서 문의드리는 겁니다.

대답은...

“아..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냥 듣는 건 되는데 자격증은 중급 자격증 없으면 고급은 못 따요.”
아.... 중급자격증이 없으면 고급자격증을 못 딴다고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급 없이 중급은 딸 수 있으면서

왜 중급 없이 고급은 안 되는 걸까?


이어서 온 대답은....

“중급 자격증 없으면 고급 자격증을 딸 수 없는 게 상식이잖아요?
가능하다면 누구나 다 고급 따려고 하겠죠 안 그래요?”


나도 살짝 짜증이 났다.

중급은 초급 없어도 가능한데

왜 중급 없이 고급 딸 수 없는 게 상식입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져봤자 뭐 하겠니...라는 생각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중급 필기시험 25만 원,

고급 강의 + 고급 필기시험까지 합치면…

최소 50만 원 이상.


그 돈의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그 돈으로 생두를 사고,

백 번이라도 더 볶아보는 게 맞을까?


그러던 중, 어떤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카페쇼. 그리고 또 하나의 갈림길

서울 카페쇼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로스터기 업체들이 출동하는 ‘그 행사’.


그 순간, 모든 고민이 멈췄다.

자격증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가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차가 없다.


수서역은 이미 매진,

서울역은 조금 남았지만

거기서 코엑스까지 가려면 40~50분.


왕복 기차비 두 명이면 18만 원 이상.

거기에 입장료 2명 5만 원.

왕복 이동 3시간, 관람 시간은 고작 4~5시간.

4~5시간을 위해 최소 25만 원.


그 비용… 과연 가치가 있을까?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로스터기 라인업.

부자로스터기, 스트롱홀드, 불렛 로스터기, 리오나이 커서, 이지스터 기센 로스터기 등등”


부산에서도 볼 수 없고,

대구에서는 절대 못 보는 그 스케일.

그리고 내가 눈여겨보던 로스터기들까지 온다는 소식.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상의했다.

“기차 말고… 그냥 차로 갈까?”


여자친구가 경차를 타고 있어서

톨비 50%, 주차비 50%. 연비까지 고려하면...

서울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비용보다 저렴하게

이동 시간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그 순간 명분이 만들어졌다.

여자친구는 이상하게도… 이런 운이 있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입장권… 나 당첨됐는데?”

두 장.


정확히 우리가 필요한 숫자 그대로.

로또는 안 맞는데,

이상하게 이런 당첨은 또 잘 된다.


그 입장권 두 장이

그냥 우리를 서울로 밀어 넣는 명분이 되었다.


“가야겠다. 가는 게 맞다.”

서울 카페쇼 근처의 공영주차장을 찾고,

경차 할인, 톨비 계산, 연비 체크.

오전 11시에 도착해서

최대한 오래 보고 내려오는 계획.


그런데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4~5시에 서울 빠져나오려고 출발하면 차 엄청 막힌대.”

“누가 그래?”

“AI가.”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대구에서 출발은 7시 → 6시,

서울에서 나오는 시간은 4시 → 3시.

단 1시간씩 앞당긴 것뿐인데,

문제는 출발 준비였다.


4시 30분 기상.

거기까지 가는데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게다가…

그날 나는 로스터기에 대한 큰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거지인 나에게 최소 600만 원 이상이라는 큰돈이 오갈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월, 화, 수

일부러 조금씩 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목요일, 드디어

나는 4시 30분에 눈을 떴다.


여자친구를 태우고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고속도로 위로 올랐다.


밖에는 어둠,

안에는 기대와 긴장.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얻을지, 배울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렇게 달리는 거구나.”


오늘 많이 피곤하겠지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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