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팅을 배워 납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표 앞에는 두 가지 벽이 있었다.
첫 번째는 기술.
아직 나는 불을 다루는 손이 미숙했고,
납품을 한다는 건 그 이상의 ‘일관성’을 요구했다.
두 번째는 장비.
납품용 로스터기는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게다가 200g·300g짜리 작은 로스터기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그래서 내 선택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납품보다는 온라인 판매를 목표로 삼기로 했다.
크지 않지만, 그래도 1kg는 roasted 할 수 있는 로스터기.
내가 감각을 담아 기획하고 로스팅하고,
누군가에게 ‘향’으로 전달할 수 있는 로스터기.
그런 장비를 찾기 위해 요즘은 매일 밤
유튜브와 사이트를 뒤적이며
스펙을 비교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SCA 초급과 중급까지 배우고 나니
슬슬 ‘고급’이 눈에 밟혔다.
왜냐면 나는 기술보다 ‘이유’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니까.
불을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
공기를 왜 지금 열어야 하는지,
그래프가 왜 그렇게 꺾이는지.
그 ‘왜’를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강의가
바로 고급 로스팅 강의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문의를 했다.
“고급 자격증, 들을 수 있을까요?”
저번에 이야기를 했는데...
네? 무슨 말인가요?
저번에 문의하신 분 아닌가요?
처음 문의 드립니다.
초급과 중급 로스팅 배웠고 자격증은 취득하지 않았지만 고급 자격증은 관심이 있어서 문의드리는 겁니다.
대답은...
“아..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냥 듣는 건 되는데 자격증은 중급 자격증 없으면 고급은 못 따요.”
아.... 중급자격증이 없으면 고급자격증을 못 딴다고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급 없이 중급은 딸 수 있으면서
왜 중급 없이 고급은 안 되는 걸까?
이어서 온 대답은....
“중급 자격증 없으면 고급 자격증을 딸 수 없는 게 상식이잖아요?
가능하다면 누구나 다 고급 따려고 하겠죠 안 그래요?”
나도 살짝 짜증이 났다.
중급은 초급 없어도 가능한데
왜 중급 없이 고급 딸 수 없는 게 상식입니까!?
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정해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따져봤자 뭐 하겠니...라는 생각에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중급 필기시험 25만 원,
고급 강의 + 고급 필기시험까지 합치면…
최소 50만 원 이상.
그 돈의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그 돈으로 생두를 사고,
백 번이라도 더 볶아보는 게 맞을까?
그러던 중, 어떤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카페쇼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로스터기 업체들이 출동하는 ‘그 행사’.
그 순간, 모든 고민이 멈췄다.
자격증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가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차가 없다.
수서역은 이미 매진,
서울역은 조금 남았지만
거기서 코엑스까지 가려면 40~50분.
왕복 기차비 두 명이면 18만 원 이상.
거기에 입장료 2명 5만 원.
왕복 이동 3시간, 관람 시간은 고작 4~5시간.
4~5시간을 위해 최소 25만 원.
그 비용… 과연 가치가 있을까?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로스터기 라인업.
부자로스터기, 스트롱홀드, 불렛 로스터기, 리오나이 커서, 이지스터 기센 로스터기 등등”
부산에서도 볼 수 없고,
대구에서는 절대 못 보는 그 스케일.
그리고 내가 눈여겨보던 로스터기들까지 온다는 소식.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상의했다.
“기차 말고… 그냥 차로 갈까?”
여자친구가 경차를 타고 있어서
톨비 50%, 주차비 50%. 연비까지 고려하면...
서울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비용보다 저렴하게
이동 시간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
그리고 그 순간 명분이 만들어졌다.
여자친구는 이상하게도… 이런 운이 있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입장권… 나 당첨됐는데?”
두 장.
정확히 우리가 필요한 숫자 그대로.
로또는 안 맞는데,
이상하게 이런 당첨은 또 잘 된다.
그 입장권 두 장이
그냥 우리를 서울로 밀어 넣는 명분이 되었다.
“가야겠다. 가는 게 맞다.”
서울 카페쇼 근처의 공영주차장을 찾고,
경차 할인, 톨비 계산, 연비 체크.
오전 11시에 도착해서
최대한 오래 보고 내려오는 계획.
그런데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여자친구가 말했다.
“오빠… 4~5시에 서울 빠져나오려고 출발하면 차 엄청 막힌대.”
“누가 그래?”
“AI가.”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다.
대구에서 출발은 7시 → 6시,
서울에서 나오는 시간은 4시 → 3시.
단 1시간씩 앞당긴 것뿐인데,
문제는 출발 준비였다.
4시 30분 기상.
거기까지 가는데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게다가…
그날 나는 로스터기에 대한 큰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거지인 나에게 최소 600만 원 이상이라는 큰돈이 오갈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월, 화, 수
일부러 조금씩 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목요일, 드디어
나는 4시 30분에 눈을 떴다.
여자친구를 태우고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고속도로 위로 올랐다.
밖에는 어둠,
안에는 기대와 긴장.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무엇을 얻을지, 배울지, 모르겠지만...
결국 이렇게 달리는 거구나.”
오늘 많이 피곤하겠지만.....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