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여행
카페에 가면 항상 보던 머신이 있었다.
주문대 뒤에 반짝이는 기계.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바리스타 수업 첫날,
그 앞에 서보니 이상하리만치 낯설었다.
설명을 들으며 포타필터를 뺐는데,
"어라? 이거 왜 이렇게 무겁지?"
당황스러운 무게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배운 대로 하나하나 순서를 따라가며 커피를 내렸다.
타이머를 누르고,
탬핑을 하고,
추출이 끝난 커피를 컵에 담아 마셔봤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그냥 내가 예전에 카페에서 마시던 아메리카노 맛이구나.”
그게 끝이었다.
그날은 커피를 ‘느끼기’보다, 기계를 다루기 위한 동작들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
그날 이후, 시험 방식에 대해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작하고,
찻잔은 어디에 두고,
무엇을 먼저 하고,
어떤 실수를 하면 감점이 되는지.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가는 기준도 많았다.
“이게 왜 감점이지?”
하지만 시험은 시험이니까.
규칙은 따라야 하니까.
머릿속에서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규칙과 절차를 외웠다.
몇 날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은 블렌딩에 신경 쓴 원두입니다.”
나는 별 기대를 안 했다.
늘 그랬듯, 뻔하겠지 싶었다.
그날도 열심히 동작을 외우며 순서에 맞게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그 커피를 맛봤다.
옹?
진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어?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탄맛도, 과한 산미도 없었다.
쓴맛은 사라지고,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복합적인 향이 입 안에서 퍼졌다.
찌르는 듯한 강한 느낌 없이, 밸런스가 고르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블렌딩’
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전엔 드립을 주로 했고, 단일 원두에만 집중했었다.
모카포트를 사용할 땐 가볍게 블렌딩해보긴 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블렌딩의 목적’을 체감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커피란, 원두가 아니라
‘의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맛을 하나로 모으고,
정리하고,
조화롭게 설계하려는 그 의도.
그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부드러운 인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
감정으로만 접근하던 나에게,
‘설계된 맛’ 감동이었다.
그날 이후,
커피를 내릴 때 나도 내 의도를 조금 더 진지하게 바라보게 됐다.
향만 좋은 커피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될 때의 인상까지 상상하게 되었다.
커피를 배운다는 건,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의도를 담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그걸 처음으로 느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