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와 에세이의 차이
일기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쓸 수 있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 일기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했는지 늘어놓는 것도 일기이다. 아니면 오늘 하루에 일어난 일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보는 것도 일기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적어보는 것이 일기이다. 그리고 좋은 일기에는 그 경험을 통해 얻었던 생각들이 조금은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기는 그런 것들이 아예 없어도 된다. 조리가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칭찬받아야 하는 압박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기를 쓰지 못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일기를 선생님이 확인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도 무의식에 누군가가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조금은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그것이 일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이유이다.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어떤 방식으로 쓰고, 어떻게 평가를 받았던 어른의 일기는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서 써야 한다. 자기만을 위해서 쓴다는 것은 나를 위해 나중의 추억으로 남겨둘 반짝거리는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은 조금씩 변화한다. 그 변화를 포착할 수 있고, 혹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일기를 써야 한다. 쓰다 보면 몰랐던 나의 생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일기를 매일 쓰다 보면 가끔씩 내가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물음들이 드러나게 된다. 만약 매일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면 나는 이 걱정을 매일 해야 하는 것일까. 이 걱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까, 혹은 나와 다를까. 이런 물음들이 생겨나면 그것이 맞든 틀리든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면 답을 찾아보기도 하고, 헤매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불분명했던 것이 명확해지고, 새롭게 만들어낸 생각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렇게 되면 바로 일기가 에세이로 넘어가는 것이다.
일기에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의 내밀한 생각이 들어간다. 하지만 에세이는 타인과 공유하고자 하는 생각들이 드러난다. 일기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바로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꾸준히 쓰고, 주위의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누구나 에세이를 쓸 수 있다. 책을 읽고 줄거리만 파악하면 에세이가 아니지만 그 안에서 나만의 생각을 끌어내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진솔한 이야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남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꾸준하게 일기를 쓰다 보면 조금씩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기본을 다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기는 이와 같다.
오늘 산책을 했다. 날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 같다. 벌써 봄이 되었구나.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것을 에세이로 바꿔보면,
산책을 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벌써 봄이 왔다.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보고 인생의 변화를 본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이렇게 싹이 움트는 봄을 지나서 왕성한 겨울을 보내고, 무르익는 가을을 맞이하면 생명이 사라지는 겨울에 다다른다. 계절 안에서 무상함을 보는 것이다. 주희의 제자가 주희에게 찾아와서 변화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주희는 아직 ‘항상’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변화’에게 대해서 알기를 원하느냐고 말했다. ‘항상’을 먼저 아는 것이 먼저이고, ‘변화’는 그 이후에 알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분명 언제나 ‘변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화’보다는 ‘항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에만 마음을 쓰면 언제나 무상함과 허무함 속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태도는 ‘변화’가 아니라 ‘항상’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내가 매일 비슷하게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나 혹은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하는 부분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그것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마음인 것이다. 일기도 지나치게 반복되면 쓰기가 싫어진다. 마음에 힘든 것을 매일 똑같이 쏟아내고 해결되는 것이 없으면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된다. 처음에는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지만 매번 똑같은 언어로 표현되면 쓰는 나부터 지겨워지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에세이의 단계에 돌입할 수 있다. 내가 매번 고민하는 그 문제를 뽑아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해결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해결되지 않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지내는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생각이 흘러나온다.
어려움만 쏟아내다가 그것을 글로써 해결하려고 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된다. 내가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라면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향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을 발견하는 가운데 해소되는 것이 생겨나고 삶에 대한 통찰이 드러난다. 나의 진솔한 고민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나의 작은 깨달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에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 이 단계를 글로 설명하면 바로 다른 사람들도 읽을 수 있는 에세이가 된다. 소소한 메시지라고 담기는 그것은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글이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나의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기를 써야 한다. 그런데 일기를 어떤 형식이나 조건이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하면 쓸 수가 없다. 일기는 마음이 흐르는 대로 쓰는 것이다. 느낌이나 판단이 뒤섞이고 도무지 내 생각이 무엇인지 조자 알아볼 수 없는 글도 일기이다. 추억을 곱씹고 남기고자 하는 글을 일기라고 정의하면 일기를 쓰는 일이 대단히 부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기는 오로지 내 마음의 찌꺼기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 일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무슨 글이든 쓰기만 하면 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조금은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작은 깨달음이 피어난다. 그것을 정리하면 바로 에세이가 되는 것이다. 에세이가 되면 비로소 타인과 공유할 수 있고 생각을 나눌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일기가 에세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혼자만 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미워하는 것도 어쩌면 타인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보잘것없는 생각이라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또 다른 기쁨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일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에세이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