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른을 위한 글쓰기

그 시작의 어려움

by 우승희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이 무엇을 시작하려고 할 때 마음이 두근거린다. 달릴 때의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다릴 때 필요한 러닝화나 옷을 사며 준비를 한다. 다 갖추어 입고 공원에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든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데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공원에 도착해서 얼마나 뛰어야 하는지 고민을 했었는데 공원까지 뛰어가는 것이 벅차다. 공원에 간신히 도착하면 마음이 더욱 힘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달리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늦게 달려서는 이 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내 뒤에서 달려온 사람들도 이미 나를 지나쳐서 저 멀리 가있다. 조금만 있으면 아예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느낀 생각들이다. 공원에 산책을 나갔을 때는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달리기를 시작하자 잘 달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겉모습만 보아도 꽤 오랫동안 달리기를 해왔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 앞에서 자꾸 마음이 작아지고, 위축된다. 시작의 두근거림은 잠시이다. 일단 시작하면 이미 앞서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서 마음이 조급해진다. 차라리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마음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마음에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작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쓰기이다. 그리고 쓰기는 어쩌면 무엇보다 개인적인 일이다. 나의 생각으로 글로써 물화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내가 쓰기로 마음먹은 그 이유 때문에 쓰는 것이라면 시작의 부담이 달리기보다도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감정이 밀려온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 이미 앞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즉시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초등학생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내가 생각이 꽤나 깊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자 내가 생각했던 것을 글로 옮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은 여기라고 생각했는데 글은 자꾸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도망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는 그래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달리기를 이렇게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나의 글을 보고 창피해서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마음속에는 꽤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나. 나 자신에 대해서 더할 수 없는 나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이다. 깊다고 생각했던 나의 의견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다 날아가 버리고 이상하고 어색한 것들만 찌꺼기처럼 남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글을 처음부터 쓰지 않았다면 내가 이토록 글을 못 쓰는지 알 수 없었을 텐데. 괜히 글을 쓰기 시작해서 나의 부족함만을 확인하게 되었구나. 후회가 밀려온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다. 달리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다시 시작하면 하기 어려운 것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이렇게 나의 마음을 조금도 담지 못한다. 글이지만 글이 아닌 글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글을 쓰게 되면서 한 문단을 쓰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긴장이 되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다시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기를 반복했었다. 나의 마음이 무척이나 단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글로 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아무도 없고, 또 지워버리면 그만인데 나는 왜 그렇게도 떨리고 긴장되었을까. 글을 쓰기 전에는 나의 마음을 막연하지만 제대로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나의 글이 어떻게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나보다 저 멀리 나아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들지 않을 정도가 된다. 누구도 보지 않는데 왜 이렇게 창피한지. 내가 그동안 누군가에게 했던 말들도 이렇게 한심했을까. 아니면 말의 조리와 글의 조리가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남들이 볼까 봐 자정에 일어나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인데도 너무나 부끄러워서 도저히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날은 간신히 글을 쓰고 나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어렵게 쓴 글을 읽고 그냥 지워버렸다. 쓸 때보다 쓰고 난 후에 글을 보면 이상한 점을 더욱 쉽게 발견하게 된다. 어제는 그럼에도 간신히 하고자 하는 말을 쓴 것 같은데 오늘 보니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글쓰기의 시작은 이처럼 어색하고 부끄럽다. 말은 아무리 해도 고정되지 않는다. 남지 않는다. 남았다고 해도 이렇게 저렇게 다시 말하고 붙이다 보면 또 다른 말이 된다. 말은 고정되지 않아서 불안함이 덜하다. 확실하게 글을 쓰면 나의 생각이 고정되고, 그것에 대해 속일 수가 없다. 그것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의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다. 나의 글을 내가 확인하고, 나의 위치를 파악하는 그 과정이 참을 수 없이 창피하고 화가 난다. 생각이 글로 이어지지 않는 답답함을 견디느니 차라리 글을 피하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글을 견디기로 했다. 글을 쓰고 언제든지 지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절대 누구에게도 나의 글을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작은 바람에도 쓰러질 정도로 마음이 연약해진다. 자신감도 바닥을 친다. 글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누구와도 나의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다. 나의 글은 특히 더욱더 공개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때부터 언제라도 지우려는 마음으로 글을 써보았다. 나는 저기로 가려고 하는데 글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나는 이것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글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나에게 쓰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삐 풀린 말을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글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가 반대로 생각했던 것을 찬성하기도 하고, 찬성했던 것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오히려 알 수 없게 된다. 손이 이끌리는 곳으로 가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글의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부끄러운 과정을 견디다 보면 조금씩 글이 차분해진다. 난리를 치던 말이 조금씩 길들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직도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이리저리 날뛰는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의 어려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형편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마음 안에 생각지 못한 불쾌함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것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이지 나라는 사람이 본래 가진 문제가 아니다. 쓰기 전에는 생각이 정리되어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인식하지만 쓰기 시작하면 마음이 엉망진창 얽기 설기 엮인 실타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나라는 사람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글을 쓸 때 누구나 겪는 문제이다. 그것을 겪어내면 조금씩 글이 차분해지고,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정도에는 이르게 된다. 나의 정제되어 있지 않은 거친 마음속을 참아내는 것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계속 쓰다 보면 반드시 조금 나아지는 단계로 들어설 수 있다. 글쓰기의 시작은 그 어떤 시작보다 괴로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진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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