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른을 위한 글쓰기

글은 진솔해야 한다

by 우승희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지만 잘 쓰지 못한다. 잘 쓴다는 기준은 알만한 대가들의 글이다. 며칠 전에 다시 김훈 선생님의 책을 펼쳐보았다. 방학 동안 아이와 역사 공부를 같이 했다.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처음으로 중앙국립박물관도 가보았다. 그러다가 《남한산성》을 읽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읽는데 그야말로 전율했다. 아이는 재미가 없다며 도망가 버렸다. 책은 크기가 꽤나 작다. 첫 페이지는 더욱이 글자가 더 적다. 그런데 한 문장이 너무나 무거웠다. 한 문장이 너무 무거우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신하들의 말을 뱀에 비유해서 쓴 표현은 나를 압도했다. 이것이 정말 잘 쓴 글이구나. 김훈 선생님의 글은 날로 간결해지고 있다. 그런데 글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나는 이런 글 앞에서 나의 글을 떠올릴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마음이 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하는 걸까.

이런 마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우스워할 것이다. 어떻게 너의 글을 대가와 비교할 수 있느냐. 자기 수준을 알고 마음이 상하든 말든 해라.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가 손흥민을 보면서 꿈꿀 수 있고, 왜 나는 손흥민처럼 실력이 늘지 않을까 낙담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 발밑에 있는 진흙도 치우지 못하면서 저 멀리에 있는 반짝거리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또 빨리 그곳으로 가고 싶어서 조바심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한없이 좋은 글들 앞에서 나는 용기를 잃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장점은 가지고 있다. 쓰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용기를 잃어도 쓰고, 기분이 나빠도 쓰고, 어찌 되었든 쓰는 것이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도 나의 글을 보지 않아도 나는 쓰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한편으로는 잘 쓴 글들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지우지 못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글이라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나름의 정의는 아니고 고전에서 성현들이 말하는 정의이다. 《안씨가훈》의 안지추는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면 좋은 글이라고 했다. 속이지 않고, 꾸미지 않고 진솔한 글이라면 그것이 곧 좋은 글이라는 것이다. 대문장가가 되는 일은 황하의 강이 맑아지길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훈 선생님과 같은 문장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오로지 글 안에 나의 생각이 온전히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몽테뉴가 쓴 글은 본래 《수상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이름은 《에세》이다. ‘에세이’라는 장르의 시작은 몽테뉴에서 시작되었다. 서문에서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나의 진솔한 이야기이다.” 글이라는 것은 진솔함이 생명이다. 이것도 또한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작가가 되지는 않더라도 글을 쓰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니면 칭찬받기 위해서 글을 쓰면 금세 글에서 그 점이 드러나고 만다. 그리고 지나치게 꾸미면 또 읽기가 어렵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는지 독자가 고민해야 한다. 그것도 또한 잘못된 글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언제나 나에게 솔직하게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만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주 내가 다시 꾸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전을 많이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한자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 그래서 내 진솔한 이야기에 어색하게 고전이나 한자를 끌어들이고 멋지게 꾸미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글이라는 것이 단지 진솔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은 글을 쓸 수 있다. 좋은 글, 잘 쓴 글을 추구하면 글을 써서는 안 된다. 진솔한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마음을 제대로 보기 위함이지 타인에게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타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상담 전문가에게 찾아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들어줄 수 없다. 그리고 나조차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남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 있고,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타인에게 이해될 수 있는 일도 있고, 이해받지 못하는 일도 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분별해서 전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말도 누더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나의 마음을 내가 솔직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이다. 글을 세상에 내놓고 평가받고 응원받으려고 쓰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나의 진의를 내가 발견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나의 진심은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은 깊은 심해에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는 노력을 하다 보면 조금씩 진짜 마음이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의 마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아도 또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면 저 아래로 사라져 버린다. 매일 찾고 또다시 찾으면서 그렇게 마음을 보듬어야 하는 것이다.

진솔한 나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그것이 곧 잘 쓴 글이다. 내 글 안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아니면 꾸미려고 썼는지는 나도 알고 그것을 읽는 다른 사람도 안다. 비록 좋은 글이 아니더라도 내가 솔직하게 쓴 글이라면 나는 비난도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진심도 없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쓴 글이라면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울 것 같다. 대문장가도 아닌데 솔직한 글도 쓰지 못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종이를 낭비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운 일이 되는 것이다. 꾸미지 않는 글은 비록 잘 쓴 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담을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라고 말한 성현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도 바로 이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잘 쓰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말하면 나는 절대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서도 안 된다. 처음에 어른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꾸미려는 마음이 있었다. 처음으로 브런치에 연재를 하게 되니 글에 힘이 들어갔다. ‘어떻게 뽐낼 수 있을까’, ‘아는 것들을 어떻게 더 많이 드러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이 머리에 꽉 차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꼭 이런다. 처음부터 편안하게 글을 시작할 줄 모른다. 이렇게 며칠 동안 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마음이 힘든지 고민해 보다가 비로소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전혀 진솔한 태도로 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솔한 것이 글쓰기의 다라고 여기니 글이 술술 써진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오로지 나의 이야기를 담아야 내가 글을 쓸 때 힘이 들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나의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멋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러나 그런 글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것이 나이다. 왜냐하면 힘을 주면 힘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꾸미려고 하면 사람과의 대화가 지옥이 된다. 마음이 편한 가운데 만나고 솔직할 줄 알아야 누구를 앞에 두어도 편한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것들을 담으려고 하지 말고, 꾸밈없는 나의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진솔하면 곧 좋은 글이다. 고로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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