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응원은 불필요하다
무엇을 시작하든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새로 생겨난 뜻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나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니 다른 사람에게 나누면 나의 생각에 더욱 좋은 생각들을 보태주고, 걱정되는 마음을 보듬어 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품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반응은 언제나 나의 기대에서 벗어난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해 주고,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반응이 반드시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나 특별한 의도는 아니다. 그저 자기가 아는 대로 좋은 것만큼이나 좋지 않은 것까지 말해줄 뿐이다.
새롭게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이 사실을 응원받고 싶어진다. 그리고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의 변화에 대해 알려주어야 할 의무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말하면 시큰둥하다. 그것은 나를 서운하게 한다. 오래 쓸 수 없을 거라고 비관적으로 말하면 마음이 위축된다. 반대로 대단한 응원을 받으면 또 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생겨난다. 타인의 비난이든 응원이든 나의 글쓰기에는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조용히 시작해서 매일 내가 하기로 한 것을 완수하면 된다. 남에게 나의 시작을 알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나라에 영공이라는 사람은 젊은 남자를 끼고 지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미자하는 총애받는 신하였다. 그런데 미자하는 자기의 부모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급히 왕의 수레를 몰래 타고 갔다. 위나라에는 왕의 수레를 타면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왕은 이에 대해 “효성이 지극하구나! 어머니를 위해서 법도 잊고 행동했구나!”라며 미자하를 칭찬했다. 또 하루는 미자하가 왕과 함께 정원을 거닐다가 자기가 먹고 있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다. 왕은 이를 두고 감탄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신의 입맛도 잊고 나를 위해 내어 주다니!” 하지만 세월이 흘러 미자하는 늙고 아름다운 미모가 사라졌다. 그러자 왕의 총애도 그와 함께 사라지고 말핬다. 이후 미자하가 또 잘못을 저지르자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 자는 내 수레를 몰래 타고 나간 적이 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였다!”
미자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왕은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평가를 내렸다. 자기가 좋아했을 때는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좋은 쪽으로 해석했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사라진 후에는 평가를 완전히 뒤바꿔버렸던 것이다. 이 고사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지혜가 있다.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타인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나에 대한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상황이 또 달라질 수도 있다. 나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고정적이지 않은 것을 지탱하면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흔들리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나를 벗어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렇게 흔들리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는 쓰기 싫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고, 잘 쓰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는 것이다. 미자하가 자신에 대한 평가를 오로지 영공에게만 의지했다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찾을 곳이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일도 남에게 일일이 평가받고자 하는 것도 나에게 유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가에는 반드시 비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칭찬도 마찬가지로 평가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뿌듯한 생각이 들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칭찬은 쉽게 비난으로 바뀔 수 있다.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큰 것처럼 좋은 평가를 받다가 조금이라도 잘 쓰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비난의 화살로 바뀌는 것이다. 나는 때로는 글을 잘 쓰기도 하지만 잘 쓰지 못할 때가 비할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잘 쓰지 못한 글을 남에게 보여주었다면 나는 그 평가에 못 이기고 글쓰기를 그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평가받지 않으면 어떤 수준인지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쓸 수 있다. 글을 잘 쓰는 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기술이나 방법보다 확실한 것은 자꾸 쓰고 또 쓰는 것이다. 쓰는 것을 유지하는 것만큼 글쓰기를 잘하게 되는 비법은 없는 것이다.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평가받지 않는 것이다. 칭찬을 받으면 고무되어서 마음이 들뜰 수 있고, 비난을 받으면 위축된다. 두 가지 모두 다 글을 지속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글은 온전히 나의 힘으로 완성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공유해서는 안 된다. 어떤 평가도 나의 뜻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은 쓰기 전과 쓰는 과정이 다르고, 쓰는 것을 마무리할 때도 또 다르다. 글은 쓰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을 낳는다. 본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는 것이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부터 나의 생각을 말하거나 과정을 공유하는 것은 나의 글쓰기를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만 받게 되는 것이다. 결과물이 어느 정도가 되었든 순수하게 나의 생각으로 끌고 가는 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다. 중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생각을 바꾸면 어떤 결과 앞에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결국에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더라도 온전하게 나의 힘으로 끝을 내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남에게 나의 글을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나의 생각을 끌어내는데 다른 사람의 응원은 불필요하다. 특히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쓰는 글이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타인에게 나의 글을 평가받고자 하는 마음은 나의 귀한 것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내가 가진 보석을 남에게 맡기고 잘 가지고 있는지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의 글은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것을 잃지 않았는지 바라보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다. 세상에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의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그 평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면 내가 잘 쓰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잘 쓰는 사람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고치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 혹은 나 스스로 잘 썼다고 생각될 때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도 피어난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내가 나와 약속한 만큼 글을 쓰는 데 있어 언제나 방해가 될 뿐인가. 글을 쓰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의 평가도 신경 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꾸 꾸미려는 마음이 생겨나고 더 잘 쓰려는 욕심이 밀려온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특히 어른이 되어서 나를 마주하기 위해서 쓰는 글이라면 더더욱 남들에게 칭찬받는 글이 아니라 나의 본심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글이다. 어른이 되어도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나의 생각을 온전하게 끌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놓여 있는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글일 뿐이다. 그것을 남에게 알리고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글이 쌓이고 나의 진심이 점점 더 명확해지면 그쯤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마음이 여리다. 글을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완성하면 드디어 다른 이에게 보여주어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다. 잘 쓰든 못쓰든 자신의 힘으로 한편을 완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확고한 마음이 생겨났을 테니 조금 더 이성적으로 평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쓸 수 있는 마음을 나의 의지로 챙길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타인의 평가는 결국에는 불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