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하는 이유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잘 알까.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면 나는 누구에게도 찾아가서 나의 마음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드나들며 나의 마음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의사를 찾아가거나 강연자리에 가서 도대체 나의 마음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것만 보아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잘 안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닌 타인이 나를 더욱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것도 어색하다. 몇 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고 해서, 혹은 그 사람이 전문가라고 해서 나의 마음을 더 안다고 해야 할까. 이것도 조금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길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아무리 나의 마음을 끌어내서 말해도 언어로 전달되는 과정에서는 에러가 발생한다. 사람은 녹음기가 아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다른 해석을 한다. 언어는 전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밑바닥에 있는 내 마음까지는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온전히 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나의 심정을 다른 사람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다른 단위로 같은 것을 재어보는 것과 같다. 나는 무게인데 길이를 재는 도구를 가져와서 가늠해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오로지 나라는 단위로만 재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밖에 나를 알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단 한 가지이다. 나의 마음을 나의 힘으로 끌어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글로써만 가능하다. 말은 하는 동시에 휘발되어 버린다. 글은 맞춤법이 틀렸던 어색한 문장이든 어쨌든 실체가 된다. 실체가 있는 매개로 나의 마음을 끌어내야 비로소 조금씩 나의 마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말을 할 때는 타인의 표정이나 반응에 따라 나의 말이 바뀐다. 하지만 나의 글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나의 마음을 찾는데 글이 필요한 이유이다.
“슬프도다! 사람들은 닭과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도 마음을 잃어버리고는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哀哉 人有雞犬放 則知求之 有放心 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맹자·고자상》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이 생기면 어떻게든 찾으려고 한다. 돈을 잃어버렸는데 찾지 않으려는 사람은 없다. 귀중한 보석을 누군가 훔쳐갔을 때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어떤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라도 찾으려고 한다. 그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맹자는 이처럼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닭이나 개는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심을 두지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 슬퍼했던 것이다. 맹자는 사람에게는 본래 선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본래 그것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없어졌다는 것이다. 잃어버렸던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부단히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고 간절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나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진의인지는 알 수 없다. 나의 행동은 나의 진심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아니면 타인이나 사회의 압력 때문인가. 그것조차 분명하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삶이라는 표준과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바라마지 않아야 한다. 나의 말과 행동이라는 것에도 다른 사람들의 바람이 섞여 들어가 있다.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내가 아닌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과 사회와 타인은 나에게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의 진심과 나의 진심이 아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나의 마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디에 떨군 지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찾아야 오히려 내 뜻이 아닌 것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산언덕에 발자국이 난 틈바구니도 지속적으로 왕래하면 길을 이루게 되지만, 잠깐 동안이라도 왕래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 막히게 된다. 지금 띠풀이 자라나 그대의 마음을 막고 있구나.”
山徑之蹊閒, 介然用之而成路, 為閒不用, 則茅塞之矣. 今茅塞子之心矣《맹자·진심상》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위를 걸으면 힘이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자꾸 그 길로 나아가다 보면 조금씩 땅이 드러난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며칠만 그곳을 가지 않아도 어느새 풀이 자라나 길이 사라지고 만다. 아무리 좁은 틈바구니도 지속적으로 왕래하면 길이 되지만 잠깐이라도 왕래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나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이렇다. 처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해서 바로 나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쓰고 또 쓰는 가운데 조금씩 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부단히 쓰다 보면 어느새 환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다. 쓰지 않으면 마음의 길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언제나 나를 위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평가받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마음을 찾고 찾은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은 마음의 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글은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품었던 생각이 이처럼 허접한 글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의 글이 옹색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을 또 우물을 파는 것에도 비유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맑은 물이 나오지 않는다. 파고 파다 보면 비로소 맑은 물이 드러나게 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쓰기 시작하면 이것은 도무지 나마저 읽을 수 없는 내용과 생각들이다. 진흙이 시커멓게 올라와서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견디면 반드시 맑은 물이 올라온다. 글이 조리 있고 멋들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나의 본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서시는 중국의 4대 미녀이다. 이 여자가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개울에 비친 서시의 얼굴을 보고 물고기들이 부끄러워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어느 날 어떤 마을에 사는 못생긴 여자가 서시가 찡그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서시처럼 이마를 찡그렸다고 한다. 그것을 본 마을 사람들은 꼴 보기가 싫어서 가족들과 짐을 싸서 도망갔다고 한다. 부자들은 문을 닫으면 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추녀에 관한 슬픈 이야기는 《장자》에 있다. 나의 마음을 모르고 외부에 휘둘리기만 한다면 이 추녀와 다를 바가 없다. 추녀는 자신의 미모와 서시가 다름을 몰랐던 것이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모르고 좋아보는 삶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발뒤꿈치만 쫓아다닌다면 이 못생긴 여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나를 찾기 위함이다. 나의 마음을 정성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유일부일 나밖에 없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가지고 싶은 물건이나 누리고 싶은 어떤 것으로 마음을 채우면 도무지 마음의 길이 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 힘든 것은 띠풀로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속적으로 쓰고 또 써야 생겨나는 길이다. 그리고 걷지 않으면 또다시 사라지고 만다. 외부의 것들에 자꾸 흔들리고 세상과 비교하고 낙담하면서 사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찾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면 더 이상 외부의 것들에 의해 흔들리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누구나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해야 한다. 글을 써서 나를 만나고 나를 보듬는 것이 나의 마음을 잃지 않고, 더 나아가 나를 잃지 않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