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이 필요하다
이제 글을 잘 쓰지 않아도 된다. 쓰고 싶은 것만 있으면 몇 초 만에 원하는 글이 뚝딱 나오기 때문이다. 맞춤법 하나도 안 틀리고, 주술 호응도 어긋나는 글에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된다. 나의 글에는 언제나 그러한 오류가 생겨나지만 기술을 이용하면 교정이 필요 없는 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글을 쓰는 것은 이제 그렇게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주제를 쓰기로 정하기만 하면 계속 질문해 나가면서 조금씩 더 나은 글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질문을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더 정교한 질문을 던지면서 좋은 답을 이끌어 낼까 가 중요한 것이지 글을 쓰는 자체는 이제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 안에서도 기쁨을 느끼고, 그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비록 좋은 결과를 아주 쉽게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에 충만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허함을 주는 것이다. 물론 매번 똑같은 작업 안에서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은 유용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나의 손끝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과 몇 번의 질문을 거쳐서 만들어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니라 다른 것에 의해서 얻어낸 결과물은 결코 온전히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스승에게 이런 말을 들었네. 교묘한 방법으로 작동되는 장치를 가진 자는 반드시 교묘한 수법으로 펼쳐지는 활동들을 하게 된다. 교묘한 수법으로 펼쳐지는 활동들을 하는 자는 반드시 교묘한 수법으로 일을 진척시키려는 마음이 가슴속에 머물면, 순수함과 소박함이 갖춰지지 않을 것이다. 순수함과 소박함이 갖춰지지 않으면, 신묘한 힘이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신묘한 힘이 자리 잡지 못한 자는 도道가 받쳐주지 않을 것이다.
吾聞之吾師 有機械者 必有機事 有機事者 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장자·천지》
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어떤 마을을 지나며 한 노인을 보았다. 그 노인의 일은 무척이나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직접 우물로 들어가서 물을 길어와 밭에 물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을 반복하고 있었으니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성과는 너무나 미미했던 것이다. 이때 자공은 뒷부분이 앞부분보다 더 무겁게 만들어진 나무 장치를 만들어 보라고 조언했다. 그것만 있으면 빨리 우물에서 물을 퍼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밭이 물을 주는 일도 신속하게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아두레박을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장자는 그 노인의 입을 빌려 위와 같이 말했다. 이렇게 교묘한 수법으로 일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생겨나면 순수함과 소박함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다. 진실한 마음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성과가 있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잃게 되는 것이다. 교묘하게 일을 진척시키려는 마음을 기심機心이라고 했다. 오늘날 기계를 가리키는 말은 기심의 기機에서 유래했다. 점점 더 빠르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들려는 마음을 가질수록 진심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편리하게 누리기만 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간을 들이고 정력을 들여서 얻어낸 성취와 쉽게 얻어낸 성취에 대한 마음 자체가 다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게 된다. 글을 써주는 기술에게 나의 정신을 맡기고 나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견디면서 그것에서 만족감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술을 역행하고 예전의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글쓰기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그것은 물론 온전히 나인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내 손끝에서 처음부터 나오는 글은 부족하더라도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질문을 던져서 얻어낸 것을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 한 두 번은 빠른 것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자꾸 축적되면 나는 중요성은 흐릿해진다. 나의 글은 내가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더라도 그것은 실제로는 나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명도선생이 글씨를 쓸 때에는 매우 정성스러웠다. 한 번은 사람들에게 “글씨를 정성스럽게 쓰는 것은 쓰는 글씨를 잘 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明道先生 作字時 甚敬 嘗謂人曰 非欲字好 即此是學. 《이정전서》
실감이 사라진 시대, 더욱더 실감이 필요하다. 글을 써주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손끝에서 나오는 실감이 더욱 절실해진다. 업무의 일환으로 기술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나를 위한 글쓰기는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질문은 기계에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도선생은 글씨를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 곧 공부라고 말했다. 쓰고 있는 그 과정 시시각각 이루어지는 그 행위가 바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고, 알 수 없는 효용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배움이라고 말한다면 배움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배움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배움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전념이 바로 배움 그 자체인 것이다.
펜이나 종이로 글을 써야 한다. 또한 비어 있는 화면을 보고 손끝으로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견디고 빠르지 않은 것을 또한 인내해야 한다. 몇 초 만에 나오는 글을 나의 글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부족하더라도 나의 글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기계에 의존하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무색해지고 만다. 나의 생각이나 어설프더라도 나의 힘으로 나오면 그것은 나에게는 귀한 의미가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에게서 비롯된 글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계의 힘을 빌려도 되지만 나를 위해서는 실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글만이 중요하면 외부의 것에 의존해도 상관없지만 나라는 사람이 귀하다면 오로지 나에게 의지해서 쓸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들이는 정성이라는 것은 성과와 상관없이 나에게 귀한 의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도선생은 이러한 마음가짐이 바로 공부라는 점에 대해서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논리 정연하고 깔끔한 글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써줄 수 있는 도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위한 글쓰기마저 소용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한 글이라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과 몸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나에게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실감이다. 내가 물리적인 시간을 들여서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구체적인 과정이 바로 실감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달해주는 메시지이다. 실감이 사라지면 마음도 마찬가지로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기계를 돕는 하나의 기계처럼 살 수는 없다. 마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감을 않는 쓰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