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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Feb 17. 2020

빈티지 크리스 폴에 대한 소고

2020 NBA 올스타 전에 나타난 Point God 

오늘은 농구 선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지만, 어쨌든 살아남은 사람들은 gonna live 해야 하는 것이고, 올스타 위캔드라는 축제는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덩크 콘테스트의 잡음이 다소 있었지만 이번 위캔드는 본 게임까지 훗날 회자될 최고의 3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올스타 MVP 어워드의 이름이 코비 브라이언트 어워드로 명명된 첫 올스타전으로 손색없는 명경기였습니다.


마지막 쿼터는 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그들의 집중력과 승부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을 때 우리는 어떤 경기를 볼 수 있는지 증명한 쿼터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클러치 타임에 코트 위에 있었던 10명은 현시점에서 NBA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팀 야니스의 5명은 전부 동부 선수들, 팀 르브론의 5명은 전부 서부 선수들이었습니다.


17년 차의 나이에 MVP 경쟁을 이어가고, 퍼스트 팀도 거의 확실시되는 '빈티지 와인' 르브론 제임스는 차치하고서라도, 85년 생 크리스 폴이 그 10명 안에 들어있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 돈치치가 벤치를 지키고 있는데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완벽한 사령관은 아직도 크리스 폴인 것일까요, 카와이 레너드가 MVP를 받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선수였습니다. Point God, 빈티지 크리스 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시즌 초반 이런저런 매체에서는 2020년을 맞아 2010's 디케이드 퍼스트팀을 뽑았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 가장 아까운 선수는 크리스 폴입니다. 일단 '릅듀커하'는 깔고 시작해야 하니까 자리가 없지만, 여섯 번째 선수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MVP와 우승이 없는 것이 아쉬운 선수죠,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요. 


멜로가 돌아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드와이트가 가자미 모드로 기대 이상의 효율을 보여주면서 클래스 있는 노장들은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아 동년배로서 기쁩니다. 그리고 여기서 빠지면 안 되는 게 85년생 크리스 폴이죠(레이커스의 그 눈치 없는 노장 선수는 여기서도 빼야겠습니다).

 

작고 핸들링 좋은 가드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같이 CP3도 데뷔 초기에는, 업템포에 능한 가드라고 평가한 국내 매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폴은 그런 선수는 아니죠, 오히려 하프코트 세팅된 상황에서 본인이 전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지휘하면서 완벽한 슈팅 기회를 창출하는 마에스트로에 가깝습니다. 가끔은 트랩에 일부러 갇혀서 플레이 하나 싶을 정도로 트랩에 들어가서 그걸 뚫어내는 것을 좋아하고 잘합니다. 그렇다고 트랜지션에 약하냐 하면 또 그건 아니죠, 오히려 과거부터 속공은 3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운반하고 분배하길 좋아했습니다. 요즘 트렌드랑 너무도 부합하는 선호였죠. 


CP3는 제가 NBA를 본 이래 가장 완벽한 디시전 메이킹을 하는 선수입니다. 트렌드가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 탑에서 볼을 완벽하게 키핑 하면서 미드레인지와 페인트 존에 스무스하게 진입하고는, 그때부터 '이 수비를 어떻게 요리하지?' 생각한 후 결국 균열을 만들고 마침내는 박살을 내던 빈티지 크리스 폴을 저는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합니다. 그 정도 효율로 디시전을 가져갈 수 있다면 3점과 페인트 존의 시대에 역행해도 할 말이 없는 선수라 할 것입니다. 


미드레인지의 제왕이래도 이견이 없을 노비츠키와, 견줄 수 있는 미드레인지의 장인이고, 항상 동료들의 움직임과 동선에 맞춰 요리조리 킬패스를 날리면서도, 클러치만 되면 코비가 되어 '이제 슛은 내가 쏜다' 모드로 쉽게 컨버전하는, 그러면서도 최상급 클러치 능력을 보이는 가드가 바로 CP3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을 위시로, 노쇠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우리는 그런 빈티지 크리스 폴을 추억 속에 남겨둬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잘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세팅해주고 나이에 맞게 출장 시간과 롤을 조정해주자 크리스 폴은 귀신같이 살아났습니다. 노쇠화의 조짐은 하락세보다는 회복력에서 먼저 드러난다고 보기에, 휴식일이 적은 크리스 폴은 좀 버거워하는 경향이 있지만 SGA, 슈뢰더가 충분히 그 여백을 채워주고 있고요. 폴도 요즘 같아선 신나서 플레이하는 것 같고, 정면 미드레인지 진입해서 올라가는, 짧을 것 같은데 때려 박히듯 들어가는 클러치 점퍼도 여전합니다. 컨파도 가봤으니 무슨 부담이 있겠습니까, 오클라호마에 맥스급 선수 하나만 더 추가된다면 플옵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프레스티 힘내라!).

 

그그컨이라 조롱받았던 과거도 있고, CP3 같은 헤비 핸들러 1 옵션은 한계가 명확하다는 편견도 여전히 존재합니다만,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에 와서도, 저는 폴보다 안정적으로 4쿼터 운영을 해줄 수 있는 포인트 가드가 있냐고 하면 댈만한 선수가 떠오르지 않네요. 부디 은퇴하는 그날까지 하던 거 계속 잘하는 모습의 빈티지 크리스 폴로 남았으면 합니다. 올스타전을 보니, 그 바람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NBA 경기가 48분짜리가 아니라 12분짜리였다면, 아마 CP3는 50살까지도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오버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로 임팩트 있는 올 시즌, 2020. 2. 17. 오늘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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