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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Feb 05. 2020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핸섬 타이거즈 -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공중파에서 농구 예능을 한다고 하니 무조건 봐야만 했다. SBS에서 방영하는 <진짜 농구, 핸섬 타이거즈>(표지 사진 출처 : https://programs.sbs.co.kr/enter/realbasketball)는 적어도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다. 물론 그 농구팬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건 함정이지만.


프로그램에서 감독을 맡은 서장훈은 KBL 올타임 넘버원으로 손색이 없다고 할 것이다. 실업 농구대잔치 시절을 포함한다면 허재와 양분될 올타임 넘버원 논쟁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을 포함해도 업적과 실력, 임팩트와 누적을 합친다 해도 서장훈은 넘버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선수였기 때문에 농구에 대한 태도는 진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서장훈은 애초에 기자 간담회에서도 '본인은 농구로 장난치지 않는다'며 전국대회 떨어지는 순간 프로그램은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농구팬이라, 예능으로 접근하지 않는 그 부분이 가장 좋았다.


문제는 감독 서장훈이 과연 동호회 농구 수준의 플레이와 농구를 잘하는(또는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텐션을 이해하고 맞춰줄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휘문중과의 첫 만남을 지나 패턴을 숙지시키고 그것을 경기에서 구현하길 원했던 3화는 많은 시청자(농구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특히, 성실하고 진지하게 프로그램에 임했고 성장하는 캐릭터였던 차은우에게 1번 역할을 맡겨서 자신감을 다운시킨 부분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무브였다. 게다가 멤버를 바꿔서 1번을 본 선수도 서지석이었다. 둘 다 리딩은 할 수 없는 선수다(그래서 4화에서는 인수를 수혈했다, 최고의 무브다).


애초에 볼키핑이 되지 않고 패스의 질도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급조하여 며칠 맞춰본 패턴이 수행될 리 만무하다. 거기다 전문 선수가 아닌 핸섬 타이거즈의 선수들이 오픈 기회가 난들 그걸 성공시킬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막말로 이 팀에서 1번을 제일 잘 볼 선수는 문수인이다. 문수인이 리바운드 후에 운반도 하고 배급도 하고 슬래싱도 하며, 답답할 때 점퍼도 본인이 쏘면 승률은 상당히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할 수 없는 역할' 내지 '하기 싫은 역할'을 강요하고, 그 패턴을 메이드 하지 못하는 당연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감독이 보인 3화는 답답함이 컸던 게 사실이다. 이게 이대성이 말한 '그놈의 한국 농구'의 민낯일까.


'동농 패스마스터'로 5년 차 운영하는 농구팀이 생각났다. 나는 그 기간에 걸쳐 '모두가 참여하는 농구'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기면 기분 좋지만 지더라도 참여하면 더 재밌는 게 농구다. 그리고 전원이 참여하다 보면 이기는 것도 농구다. 어차피 선수들 사이에 실력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각자 역할을 캐치해서 수행력이 올라가면 팀으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모든 것을 잘하는 문수인 같은 캐릭터는 어느 농구팀에나 있다. 그게 에이스다. 그럼 롤 플레이어 들은 어떨까. 롤 플레이어는 두 가지 경향을 가진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멤버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는 멤버다. 이 두 유형을 캐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고 싶은 걸 하려는 선수에게 할 수 있는 것만 강요하면 의욕이 떨어지고 재미를 찾기 어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수행하고 그게 중요한 플레이로 연결되었을 때 기쁨을 느끼는 선수에게는 그 롤을 넘어선 역할을 요구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게 자신감의 결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성향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알파독으로 똘똘 뭉친 사람도 그 분야의 권위자 앞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말하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해서 기여하고 싶은 사람은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럼 하고 싶은 건 하면 안될 거 같고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수인'이라는 중추가 있고 그를 통해 충분히 도화선에 불을 붙여 모든 선수들이 신나게 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음에도, 3회의 핸섬 타이거즈는 그렇지 못했다. 극적인 성장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의 조정이었다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4화에서는 인수를 수혈해서 약점을 보완하고 완성도 높은 팀의 모습을 보였으니 그런 조정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3화로 돌아가면 서장훈이라는 농구 이해도의 원탑이 차은우와 서지석을 사용하는 방식은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차은우는 전형적인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거기서 기여도를 높이는 스타일이고, 서지석은 보다 프리롤로 오픈 코트에 풀어놓고 하고 싶은 걸 시켜야 하는 선수다(인수가 들어오고 프리롤 스윙맨으로 돌아간 서지석의 가치는 충분히 입증된다). 인수라는 훌륭한 리딩가드의 수혈로, 앞으로의 핸섬 타이거즈는 순항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차은우가 인수와 함께 뛰면서 적당한 롤을 찾고, 행복 농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요컨대, 둘 다 옳은 방향이다. 하고 싶은 걸 해도 되고 할 수 있는 걸 해도 된다. 그럼 하고 싶은 것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할 수 있는 게 늘어나면 하고 싶은 게 생긴다. 그렇게 순환하면서 하나의 팀이 되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며 플레이하게 되는 것이다.


비단 농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게 되는 모든 선택과 일들에 투영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성향을 바꿀 필요는 없다. 반대 성향에 끌리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내가 갖지 못한 걸 쟤가 갖고 있듯이 나한테는 쟤한테 없는 게 있고, 그대로 각자 발현되는 것이니 본인의 정체성을 잃어야 할 이유는 하등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 고민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답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모두의 오지랖 내지는, 오해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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