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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Jan 28. 2020

Always Love The Hate, 코비 브라이언트

하루가 지나야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조금 각색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이곳에 남기고자 합니다.


코비는 가장 오랜 기간 싫어했던 선수였습니다. 저는 르브론 제임스의 찐 팬이고 그의 '효율'적인 면모를, 팀원을 참여시키려는 노력과 농구의 방향성을 좋아합니다. 그런 저에게 코비는 그 대척점에 존재하는 선수였습니다. 특히 드래프트 동기 중 비효율적인 스코어러로, 앨런 아이버슨을 좋아했던 것도 그에 대한 미움을 더했습니다. 조던의 아류 같았고 눈엣가시였습니다. 아이버슨이 챔프가 되기 어려워 보였기에 저는 당시 아코 아레나에 최고의 효율 농구를 이식했던 릭 아델만과, 크리스 웨버를 위시한 패싱 농구의 새크라멘토를 응원했습니다. 스토야코비치와 마이크 비비는 밀레니엄 시대의 커리와 탐슨이었죠.


밀레니엄 킹스도 코비의 들러리가 되고 나니, 저는 제리 웨스트 덕에 LA라는 빅마켓에 운 좋게 안착한 조던 키드 고딩이 당대 최고의 센터를 만났고 역사상 최고의 감독과 함께했을 뿐이라며 그를 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의 반지를 너무 손쉽게 얻고, 실력에 비해 과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르브론 제임스라는 삼지선다 효율 괴물이 등장했고, 자연스럽게 저의 선입견은 깊어갔습니다.


2004년 디트로이트 팀 농구에 레이커스의 빅 4가 패배하고 샤크와의 (다소 과장된) 불화설에 더해 결별하게 된 코비는, 사실 저의 생각대로라면 거기까지여야 했습니다. 마이애미에서 샼이 반지 하나를 더 추가하면서 코비에 대한 저의 선입견은 더 공고해졌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서부의 강력한 라인업들은 물론, 동부에 모인 빅 3도 뚫고 코비는 유유히 2개의 더맨 우승을 추가합니다. 함께 천국으로 간 지아나를 안고, 이제 샼보다 내가 반지 하나 더 많다는 농담을 건네던 코비가 기억납니다. 운 좋은 2 옵션 우승만 했던 선수라며 그간의 코비를 폄하해왔던 나 같은 사람들을 향한, 코비 특유의 대답이었습니다.


증오에서 애정이 피어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한계에 봉착하였을 때 사람은 얼마나 쉽게 포기하는지, 얼마나 간단히 현실에 타협하기 쉬운지, 자신만의 낮은 선을 정해두고 그 기준을 충족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지를 조금 알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여전히 코비는 플옵에서 깁미 더 볼을 외치며 에어볼을 주야장천 날리던 고졸 신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가장 갈구하고 있었고, 가장 좌절스러운 시간에 가장 의욕적이었던 거지요.


알아야 미워할 수 있는 법이라, 그때부터 코비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4시에 트레이닝을 시작하는 그 루틴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코비는 운이 좋은 선수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운이 나빴던 선수인지도 모릅니다. 조던에 비해 부족한 각력으로 조던의 움직임을 구현했고, 농구 선수로 작은 손도 핸디캡이었죠, 수많은 선수들이 빅마켓의 슈퍼스타라는 부담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합니다만 코비는 그 안에서 매일을 단련하고 발전해왔던 것입니다. 코비는 오른쪽 어깨가 탈구된 날 밤에, 밤새 왼손 슛을 연습했다고 하죠. 그제야 저는 이를 '코비니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네, 우리가 맘바 멘탈리티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2013년 4월, 아킬레스 건이 찢어진 순간 사실 우리는 코비와의 이별을 어느 정도 각오했습니다. 코비도 인터뷰에서 미세한 눈물을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매체에서 코비의 은퇴를 이야기합니다. 그 부상이 있던 날도 참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새벽 3시 반경에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장문의 글을 씁니다.


코비는 이 세상에는 끊어진 아킬레스 건보다 훨씬 중요한 도전과 이슈들이 많다며, 자신의 커리어가 끝나는 날은 절대 오늘이 아니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수술을 했죠, 피나는 재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코비는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합니다. 2016년 4월, 부상이 있은지 3년이나 지난 후에 말입니다.


그 글에서 코비는 "만약 곰과 내가 싸우는 걸 보면 곰의 행운을 빌어줘라("If you see me in a fight with a bear, pray for the bear")라는 말을 합니다. 커리어 마지막 경기에서도 60점을 기록한 맘바의 정신이 그대로 투영된 말이지요. 불의의 사고가 생긴 순간까지 코비는 아마 지아나에게 이러한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코비는 Mamba Out을 외치고 은퇴를 했습니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이 없어 무척 서운 했어요. 저는 이미 'Always love the hate' 하고 있었던 겁니다.

 

골든 스테이트가 73승을 하는 날 조차 모든 헤드라인 뉴스를 본인의 것으로 가져갔던 코비는 은퇴한 지 한참 후인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그 이후 한동안 또 모든 헤드라인 뉴스를 장식하겠지요. 그런데 그 헤드라인, 이제 다 필요 없으니 구석 한 귀퉁이에 스테이플스 방문해서 지아나와 웃고 있는 코비의 사진이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24초와 8초 바이얼레이션으로 그를 추모하는 장면에 좋아요를 누르는 대신, 그가 8초 24초 바이얼레이션에 걸리는 지아나에게 '라떼는 말이야' 하며 코칭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인생이 드라마인 선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드라마일 필요는 없는데, 참 야속하게도 그는 우리를 이렇게 떠나갑니다. 맘바 트레이닝 복도 멋있고, 비니도 잘 어울렸습니다. 수염이 없으면 깔끔하게 잘생겼고 있으면 또 중후한 멋이 있는 선수예요. 수트는 또 어떻습니까. 코비만큼 수트를 잘 소화하는 선수가 지금 리그에 있나요?  더 많은 걸 보여주고 갔어야죠, 더 많은 것을 해주고 갔어야 합니다. 이제 레이커 2년 차 르브론에게도 레이커네이션의 중추로서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코트 사이드에서 그 짐을 함께 덜어줬어야죠.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말이에요.

 

한동안 코트 위에서 웃는 선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모든 선수들이 바로 코비의 가장 가까운 팬이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저처럼 안티였을 수도 있겠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저도 이렇게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절절한 글을 쓰고 있는데 말입니다.

 

글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lways love the hate 하다 보니 나중에는 the hate이 사라져 버렸는데 그 자리에 코비라는 이름을 넣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더 사랑할 기회도 주지 않고 야속하게 떠나버립니다. 코비는 하늘에서도 농구를 할 거예요. 이미 오전 4시에 지아나를 깨워서 체육관으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코비가 그곳에서도 편히 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똑같이 훈련하고, 아카데미를 차려 아이들을 지도하며, 다른 은퇴한 선수들과 달리 shape을 그대로 유지하는 철저한 자기 관리까지 그대로였으면 합니다.

 

이제야 맺을 말이 떠올랐네요.


코비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농구를 '그깟 공놀이'로 대해주지 않아 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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