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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 Jan 24. 2022

결핍을 배우기로 했다

욕구의 본질 파헤치기 - 1편


훈련소에서의 밥은

항상 적었다. 매 식사를 배부르게 하여 끼니를 거르는 날도 생겼던 사회와 달리, 훈련소에서는 매 번 정량 배식을 운운하며 서러울 정도로 조금 주었다. 시금치를 줄 때 정확하게 3가닥만 분리해서 주고 시리얼을 줄 때는 10개를 직접 손으로 골라 줄 때 서러움이 아직도 기억이 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배고팠고, 그랬기에 밥 먹는 시간은 항상 설레는 시간이었다. 고된 훈련으로 더해진 허기를 가지고 마주한 밥은 그때의 나에겐 금쪽과도 같았다. 맛도 더할 나위 없었다. 분명 맛은 사회보다는 떨어질 테지만, 그것을 먹고 혀가 보내는 신호는 스테이크를 먹을 때의 신호와도 같았다. 식사 시간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었다.


자대는 훈련소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럼에도 밥의 양과 맛이 항상 풍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과자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PX에서 과자를 사 와 보관해둘 수 있었기에, 허기가 질 때 박스에서 과자를 꺼내어 군것질을 했다. 밥 먹고 와서도 살짝 아쉬울 때, 연등하는데 입이 심심할 때, 저절로 손이 과자로 향했다. 그러고는 배부를 때까지, 성에 찰 때까지 계속 과자를 먹곤 했다.


그렇게 과자를 먹다 보니 몇 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훈련소에서는 밥 한 톨까지 긁어먹었는데, 여기서는 밥맛이 없어졌고 먹다 남기는 경우도 허다해졌다. 조금만 맛이 없어도 '라면 먹어야지'나 '과자로 남은 허기를 채워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하염없이 과자를 먹게 되며 속이 더부룩해지기도 하고 살도 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밥 먹을 때의 행복이 사라지고, 달달한 과자로 배를 채움에도 오히려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느꼈던 것과는 결이 다른, 지속시간이 짧고 행복의 총량도 훨씬 낮은 행복이었다.




점점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한 나는 문제의 원인을 과자에 두었고 그것을 끊기로 결심했다. 밥 먹고 습관적으로 하나씩 과자를 꺼내먹었던 것을 멈추고, 연등 때마다 봉지과자를 뜯어먹던 것을 멈추기로 하였다. 하지만 단번에 과자를 끊는 것은 마치 10년 동안 흡연을 하던 사람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늘부터 금연할 거야'를 선언하는 것과 같으니, 대체제를 마련하여 줄이기로 했다. 간혹 입이 너무 심심할 때는 사탕을 하나 물고 오랫동안 입 속에 가지고 있었으며, 당이 떨어질 때는 조그마한 abc 초콜릿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언제나 과자를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임했다.


대략 2주 동안 해보았더니 몇 가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과자를 먹으며 생겼던 무기력함에서 벗어났다. 밥을 먹으면서 생기는 행복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밥이 더 맛있어지지는 않았기에...), 무기력함은 줄어들었고 밥 먹고 나서의 일과를 즐겁게 대할 수 있었다. 스스로의 관점에서 자제력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꼈고, 살이 빠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자신감도 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가끔씩 먹게 되는 과자 하나하나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신체적으로도 더부룩함은 덜 느꼈고, 오히려 과자를 안 먹었다고 허기가 생기지는 않았다. 부수적으로 돈도 아낄 수 있었다.




과자를 끊으면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겨났고, 예상보다 큰 과자의 영향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원인에 대해 깊이 고찰해보기로 하였고, 3가지 측면을 떠올렸다.


역치의 상승

훈련소에서 먹은 초코파이는 분명히 평범한 초코파이임에도 세상 어느 과자보다도 맛있었다. 하지만 자대 와서 계속 먹다 보니, 훈련소 때와 같은 초코파이 하나임에도 그로부터 느껴지는 행복이 크지 않았다. 그때와 같은 행복을 느끼려 2개, 3개를 먹어봐도 포만감만 생길 뿐 그때의 행복은 재현할 수 없었다.

같은 음식, 더 넓게 말해 같은 대상이더라도 그 배경에 따라 우리는 느끼는 감정의 정도가 달라진다. B라는 것을 접하지 못했을 때에는 A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B를 한 번 느끼고 그것에 여러 번 노출되면, B의 정도에 익숙해진 나머지 A로는 더 이상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B를 너무 많이 접하게 되면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B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C나 D와 같은 다른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색다른 것에 한계가 생기면 결국 기존의 것만 활용할 수 있으며, 얻게 되는 행복은 자연스레 감소하게 된다.


비조절

과자에 익숙해진 나머지, 더 이상 과자 하나에 옛날만큼 행복하지 않고 배부르지도 않다. 그래서 하나를 더 먹으면 포만감과 행복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하나 더 먹는다. 이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행복하기에 하나를 또 먹는다. 그렇게 더 많은 포만감과 행복을 위해 계속 과자를 섭취하게 된다. 하지만 먹을수록 드는 느낌은, 이것을 먹어서 행복을 느낀다기보다 더 많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향해 위해 계속 먹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행복보다는 공허한 느낌이 자리한다.

더 많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행복의 최대 지점을 모르기 때문에 그 지점에 정확히 멈추지 못하고 이를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지점 이후의 그래프는 가파른 절벽이기 때문에, 행복도는 오히려 감소한다. 과자의 달달함에 익숙해져 더 이상 그 달달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도 계속 먹게 되고, 먹으면서도 계속 더 달라고 외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먹게 되어 공허한 느낌에 더해 속이 더부룩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중독성/관성

또 다른 문제는 과자를 먹는 것이 기본 상태로 이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먹어왔으니 똑같이 먹어주어야지 허기를 안 느끼고 행복을 계속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이번에는 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이 때문에 과식과 불필요한 섭취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먹어도 행복하지 않고 제자리임을 느끼게 되면, 이러한 행동은 관성이고 앞서 말한 생각들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모든 문제는 과자 하나로 느끼는 행복의 부재이고,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과자가 널려있는 풍부한 환경을 그 배경으로 지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과자를 아예 끊어버리겠다는 해결책은 우연히 그 본질을 꿰뚫는 셈이 된 것이다.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의 말마따나,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을 직접 바꾸려고 하기보다 환경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꾀한다고 했다. 이러한 부분이 작용하여 해결책이 더 성공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되려 배고픔이

정신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생각에 미치기까지 했다. 여기서의 배고픔은 끼니를 거름에 따라 생기는 극단적인 상태가 아니라, 입이 심심해서 과자가 당기는 정도의 '거짓 배고픔' 혹은 허기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상태이다. 다르게 말해 신체적인 배고픔이 아니라 정신적인 배고픔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배고픔의 효과

이러한 상태는 몸에 에너지가 없는 듯하고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가지게 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배고픔을 느끼게 되면 사고의 한 구석에서 '눈앞에 있는 이 일을 끝내야 이 배고픔을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라는 회로가 작동한다. 몸은 이 회로를 실행시켜 빠르게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긴장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에 더해 포만감으로부터 발생되는 편안함과 안일함이 부재하는 점 또한 긴장 상태가 유지되는 데에 일조를 한다.

여기서의 배고픔은 '진짜' 배고픔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을 먹는다고 포만감과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공허한 느낌만을 남길뿐이다. 입이 심심해서 먹는 음식이 처음에는 맛있어서 행복이라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에 이끌려 더 섭취하게 되면 앞선 경험에서 언급했듯 더부룩함만을 남긴다. 오히려 컨디션의 하락을 불러오기 때문에 배고픔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유지하고 참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다.


호르몬의 관점

위 생각들은 단순한 경험적 추론이 아닌 호르몬의 관점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는 생각이다. 우리가 '가짜 배고픔'을 느끼는 데에는 보통 스트레스가 주요한 작용을 한다. 스트레스는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 호르몬은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을 자극해 몸에서 에너지를 더 소비하여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배고픔'이라는 상태가 긴장 상태를 불러오는 것의 이면에 이런 설명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런 배고픔을 과자로 해결하는 것이 좋지 않음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을 할 수 있다. 음식을 먹으면 그 영양소들이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을 억제한다. 이 호르몬은 앞서 언급한 스트레스와 교 감신경 자극을 담당하는 코르티솔(Cortisol)과 기타 부신 관련 호르몬들의 감소를 야기한다. 그 결과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자면, 과자를 먹지 않았을 때에 비해 교감 신경의 활성도가 낮아져 집중도가 감소할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신의 고양

배고픔을 견디게 되면서 스스로 자제력을 키우고 멘탈을 단련함에 따라 정신적으로 인내심이 높아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배고픔은 대다수의 경우 뇌를 속이는 거짓된 신호일 수 있다. 그저 입이 심심해서 음식을 넣어달라는 것과 정말 몸에 열량이 필요해서 음식을 넣어달라는 것을 비교해보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궁극적인 결과와 이를 촉발하는 욕구는 동일하기 때문에 혼동의 가능성이 높다. 후자의 경우에는 신체적으로 버텨내야 할 부분이 맞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음식 섭취로 해결되지 않는, 인내력으로 버텨야 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이 배고픔을 참는 것인 정신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 부수적으로 이를 통해 자신의 몸의 상태에 대해 더 정교하게 깨달을 수도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과자를 먹는 것에 있어 문제의식을 느껴 이런 변화들을 끌어내려했고, 그 과정에서 먹기와 참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쓰고 보니 과자라는 사소한 것에서 무슨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이끌어냈나 싶으면서 소위 '오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스로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충분히 기록으로 남길만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특히 상황을 확장하여 욕구와 관련된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을 해보기까지 하면서 욕구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은 글이 너무 길어져 다음 글에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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