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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과 함께하는 근력 운동

by 우선열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도 활발하게 뛰어놀기보다는 조용한 아이였다. 어른들은 "아이답지 않게 차분하다"며 칭찬했지만, 사실 성격이 진중했다기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에도 운동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체육 점수는 평균을 깎아먹기 일쑤였고, 달리기 같은 기초 체력 운동뿐만 아니라 피구 같은 공놀이도 싫어했다. 고무줄놀이나 사방치기에도 관심이 없었다. 얌전한 게 아니라 게으른 아이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운동 부족은 아니었다. 열악한 교통 환경 덕분이었다. 십 리가 넘는 거리를 걸어 등하교하는 건 일상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파도 걸어서 학교에 갔다. 초·중·고 12년 개근이었다. 그 시절엔 누구나 그랬다. 덕분에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아도 건강한 체질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요즘 들어 운동이 중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나이가 들어 갑자기 운동이 좋아졌을 리 없지만, 이제는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같은 편리한 교통수단과 각종 자동화 기계 덕분에 몸을 움직일 일이 거의 없다. 이러다간 손가락과 머리만 큰 외계인처럼 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운동 부족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자꾸 귀에 들어온다. TV, 신문, SNS,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운동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게다가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걸 직접 느낀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지’ 하다가도, "조금만 관리하면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까.

운동을 결심하고 가장 쉬운 걷기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운동화 끈을 매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날이 좋아서, 날이 안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핑계가 끝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용기를 낸 날이라기보다 봄이 나를 부른 날이었다. 탄천을 따라 걸으며 뜻밖의 즐거움을 발견했다. 거리에선 볼 수 없던 연둣빛 봄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따스한 햇볕, 앙증맞은 풀꽃이 "놀다 가라"며 유혹하는데 그대로 걸어 가면 하늘에 닿을듯한 지평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보니 걷는 것만으로는 아쉬워졌다. 지평선 저 너머에 행복이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더 가보고 싶었다. 점점 속도를 높였다. 달리기라고 할 순 없지만, 빠르게 걷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엄지 척"을 해줄 정도로 속도를 낼 때도 있었다.

어느새 달리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점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해졌다. 마치 학교생활도 12년이면 졸업하듯, 이제는 달리기에만 매여 있을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도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알게 된 것이 AI 헬스장이었다. 논현 복지관에 AI 기능이 포함된 운동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접했다. "필요가 공급을 낳는다"더니, 마침 딱 맞는 기회였다. 재빨리 등록을 하고 헬스장 이용 카드를 만들었다. 카드를 발급받기 전 기본 운동능력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는 카드에 입력되었다. 헬스장의 AI 운동기구는 이 카드를 인식해 내게 적합한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운동을 하면서 "잘하고 있어요!", "좀 더 힘을 내세요!", "버티는 힘이 약해요!" 같은 피드백도 들려줬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재미는 있다. AI가 정확하게 운동량을 체크해 주고 격려까지 해주니 마치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느낌이다. 부담스럽지도 않고, 편하게 운동할 수 있다. 달리기와는 달리 몸 전체의 균형이 잡히는 기분도 든다. 군살은 빠지고 근육이 단단해지는 듯하다. 나이 들면 등이 굽고 허리둘레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면 노화를 늦출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AI와 함께 운동한다는 것이 뿌듯하다.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자부심도 생긴다.

나이 들어 사회생활에서 벗어나면 시대에 뒤떨어지기 쉽다. "이제 와서 ", "나 때는 말이야" 하며 신문물에서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논현 헬스장에서 AI와 함께 운동하며 이렇게 큰소리 쳐 보고 싶다 .
"나만큼 AI와 친한 또래 노인이 있으면 나와 봐!"
운동도 하고 AI와 놀기도 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즐거움이다.
어린 시절 운동을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까지 운동과 친해질 줄이야.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방실방실 웃던 아기가 어느새 주름진 얼굴이 되어 버렸지만 세월은 그냥 흐른 것만은 아니다. 나도 따라서 흘러 왔다
앞으로도 세월과 함께 흘러야 한다.나이를 핑계삼아 세월 탓만하고 있어서는 안된다.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오늘은 처음' 이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오늘, 건강하게 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AI의 도움을 받아 운동하는 나는 최첨단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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