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2
강 건너 불 보듯 회사의 어려운 경영 상태를 지켜 보기만 하는 것 같았던 회장의 변화가 놀라 웠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며 회장을 대놓고 비난하던 차전무는 당황했고 회사의 부도로 여러사람이 힘들어 지는 상황을 우려했던 우리들은 안도 했다. 회장은 차전무의 비열함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를 감싸주는 아량을 베풀고 있다.우리는 지금 새사무실로의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이사의 표정은 순간순간 안도와 질투로 변하고 있다. 그동안 이이사는 회장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었다 재무에 관한 모든 권한을 맡겨 놓아도 항상 사전 보고를 하는 고지식한 성격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그런 이이사와 회장의 관계를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그들의 인품을 지켜 본 나도 가끔은 그들사이의 신뢰감에 의혹을 품은 적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 이사의 표정이 순간순간 변할 때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다. 이이사와 회장사이에 내가 끼어든 느낌이다. 이이사가 정색을 하며 물어 본 적이 있다.
"회장님, 아무래도 부장님한테 관심 있으신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세요?"
"글쎄,일에 대한 관심이겠지, 나도 좀 불편하기는 한데 개인적인 관심은 아닌거 같아"
"부장님은 어떠세요? 회장님한테 관심 있으신거 아니지요? 현재 재정상태랑 일처리 능력도 좀 힘들고 .
건강상태도 안좋은거 같고 . . 부장님이 원하시면 언제든 좋은 사람 소개해 드릴테니 회장님 가까이 하지 마세요, 부장님이 아깝짆아요 여태껏 혼자 힘들게 사셨는데 좋은 사람 만날 생각이면 잘 선택하셔야지요. 어려운 선택 하지 마세요 부장님 인품이면 얼머든지 좋은 사람 소개해 드릴수 있어요 "
했었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서 한 말로 알고 있다
개인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회사 내외의 일이 있을때마다 회장의 태도는 부담스럽게 다가 왔다. 그때마다 이 이사가 중간에 서서 보호막이 되어주곤 했었다. 이이사가 자리를 비운 어느 날 회장이 말했다
"눈치 채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년여 동안 지켜 보면서 실장님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염치 없긴 하지만 일 잘 마무리하고 다시 이야기 해 봅시다 "
하고 말았다. 올것이 오고 만것처럼 부담스러웠으나 그 이후 회장의 태도는 언제 그런일이 있었느냐는듯 태연했다. 오히려 개인적인 관심을 표하기 전보다 덜 부담스러울 정도로 깍뜻한 태도였다. 쓸데없는 구설에 휘말릴거 같다는 염려로 좌불안석이던 불안이 사라지고 변죽만 올려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초연한 모습이 오히려 서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안정을 찾았지만 이이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대내외적으로 회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풀릴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회사의 난제들을 여유있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문제 투성이라는 재고물건을 정리해서 단숨에 팔아치웠다. 악성루머와 빚 독촉에 시달리던 사내에 훈풍이 돌기 시작했고 차전무는 회장의 손과발처럼 움직이는것 처럼 보였지만 기회만 있으면 직원들을 모아 놓고 회장을 믿을 수 없으니 자금이 확보 되면 회계를 우리가 맡아야 한다고 역설 하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첩자가 있어 우리끼리 하는 말이 회장 귀에 다 들어가고 있으니 조심하라며 첩자를 찾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협박도 스스럼 없이 해댔다.
눈에 가시 같았던 이이사와 내가 이사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안도 할만도 한데 영업총괄을 맡고 있는 차전무 입장에서는 조직이 쪼개지는 아픔일 수도 있겠다. 회장은 무슨 일이던 이 이사와 나를 같이 불렀다. 나는 회장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놓여 날 수 있었지만 이사는 불편한 속내를 들어 내기도 하며 끊임없이 회장과 나와의 관계를 궁금해했다. 영업 세계에서의 발 빠른 소문을 아는 나는 공연한 루머에 휩쌓이고 쉽지는 않았고 이 이사에게 정확하게 해 줄 수 있는 말도 없는 상태였다. 다만 나는 회장의 변화에는 나의 영향이 있는 거 같다는 추측은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나에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음도 인정한다
한세실업 김동녕 회장이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은 허세 때문에 열심히 살고 있노라는 고백을 들은 후 내게 한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 일 년이 넘어 햇수로는 삼 년째 기울어져 가는 회사의 회장을 지켜보며 장점보다는 단점을 많이 볼 수밖에 없었다. 파산 상태인 재정, 악화 되어가는 지병, 업계의 신용은 바닥에 떨어졌고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직원들 마저 회장을 믿지 못한다. 그런 회장이 눈에 띠게 변하고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과 금연을 하고 있으며 회사재정을 정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옛날의 화려했던 영업 실력이 되살아 나고 있고
업계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진다. 반신반의하던 직원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있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벗어나일찍부터 남매를 키우느라 거친 영업 세계에서 버텨 온 나를 잘 아는 이 이사가 나를 안타까워하며 서운해하는 심정도 잘 알지만 내로 남불의 시대, 거친 영업 세계의 입담에 나를 내려놓을 수 없는 내 입장이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않고 치정과 불륜으로 매도 당하고 말 것이 뻔하다.
반평생 몸담아 온 영업 세계가 힘겨웠지만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 일 한 만큼의 보수를 받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열심히 일한 주부 영업사원들이 사회적 약자로 무시당하기보다는
그들의 영향력으로 이뤄 낸 성과들을 인정받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걷는데 사력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