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는 듯했다.
서울의 봄, 떠나려는 삼월의 발목을 홍매화가 붙잡고 있었다.
암팡지게 다문 꽃잎 끝 서슬에 머뭇거리던 꽃잎들이,
반란을 일으키듯 한꺼번에 피어났다.
그렇게 4월이 열렸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라일락까지
순서도 시간도 무시한 채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났다.
노란 은하수처럼 흐르던 개나리,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
발길 닿는 곳마다 축제 같던 벚꽃,
혼자 피어도 고고한 품위를 지키던 목련,
향기로 먼저 다가온 라일락.
올해 봄은 온통 꽃 범벅이었다.
이제 4월을 보내야 한다.
4월의 2세대, 명자꽃과 조팝꽃, 영산홍은 점차 세를 잃어가고,
도화, 이화, 앵두꽃들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다.
물 흐르듯 함께 흘러야 하는 것이 세월이지만,
사람만이 흐르는 시간을 붙잡으려 한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시인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지나간 시간에 미련을 두고 있다.
"붙잡고 매달리면 지름길로 온다"는 선조들의 지혜를 떠올려야 한다.
서양에서는 '어얼리 버드'를 노래했다.
어차피 주어진 길이라면, 뒤를 돌아볼 이유가 있을까.
때로는 낭떠러지를 지나고,
때로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다시 흘러가기도 하겠지만,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는 없다.
한꺼번에 피는 꽃에 환호하고, 지는 꽃잎에 아쉬움을 느끼지만,
앞을 보고 나아가는 길이 곧 인생길이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묻지 마라.
한 번뿐인 인생, 누구도 미리 가보지 못했다.
봄꽃이 피고 지듯,
그렇게 윤회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지나간 이의 흔적을 더듬게 되고,
추억에 젖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 갈 수는 없다.
우리는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어머니가 안 계신 두 번째 오월을 맞는다.
두 번째라고 해서 그리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를 보내야 했던 그 4월에도, 꽃은 여전히 피고 졌듯이,
나는 다시 오월을 맞는다.
살기 위해 자맥질하는 고래처럼,
그리움의 자맥질을 해야 한다.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그리움이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리움 —
때로는 높게, 때로는 조용하게.
어머니가 떠난 4월은 지나갔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리움으로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신다.
4월을 보내며, 나는 또 한 번 삶을 배운다.
떠난 것을 받아들이고, 남은 것을 품으며,
흐르는 시간에 속도를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