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찾아 볼까

by 우선열



나이 종심에는 마음가는대로 괜찮다는데

아직도 오가는 감정들을 다스리기가 만만치 않다.

젊은 시절처럼 울뚝불뚝 쏟아내지는 않지만 혼자 쯔쯔 혀 차는 소리를 삼켜야 한다.

내쏟지 않는다고 감정이 사그러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농축되어 쌓이는 듯하다.

그시절처럼 흑과 백이 선명하지 않으니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하지만

이해한다고 반드시 용납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일들이 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못마땅한 일들이다.


늦게 잠들어 출근시간에 허둥지둥 서두르는 아들 녀석을 보면

"그러게 좀 일찍 자랬더니···"구시렁거리다 쓴웃음을 짓는다.

젊은 시절에 일찍 잠들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고 있건만 새벽 기상의 묘미를 알지 못하는 아들이 안타깝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터득 될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알게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 하는 책도 있는 것을 보면 인지상정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거 같다 "조금 일찍 자면 일찍 일어 날 수 있잖아" 잔소리를 하려다 참는다

그 시절에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터득할 수도 있으니 조금 기다려 주는 게 낫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 수는 없다.


이렇게 참았던 것들이 쌓여 봇물을 이루고 있으니 늙은이가 되면 잔소리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시절에는 무조건 참는 게 미덕이었다.

특히 여자들은 삼종지의니, 시집살이에는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하는 식으로 무조건 참는 걸 강요하기도 했다.

그런 시절에도 신사임당이나 황진이 같은 여걸들이 나왔으니 인물이 못 되는 소심한 사람의 변명 같기는 하나 참고 사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다.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참는 것이 내면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나처럼 소심해서 무조건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던 사람들은 생각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삶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공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끌고 들어갈 필요는 없는데 나보다는 우리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속성이기는 하다. 일반화되어야 안심이 된다.

나의 감정 다스리기는 나의 내면에 충실했다기보다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데 급급했었다는 말이다.

웬만하면 참는 것이 능사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얼 먹고 싶은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걸 해야 했고 먹고 싶은 걸 먹어야 했다.

의견을 물을 때는 '아무거나'를 외칠 수밖에 없었고

간혹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통일' 하는 말로 묵살되고 말았다.

8시 출근하고 다섯시 퇴근하였으며 똑같이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하고 나팔바지를 입기도 했다.

아파트 평수가 다른 기준이 되기는 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밤새워 표를 구입하고 부먹 찍먹을 따지는 젊은이들이 외계인 같다.

몇 번 참아 보면 참는 것이 내면화되기 마련이다.

부먹이던 찍먹이던 탕수육 아니겠는가, 좋은 노래는 누가 불러도 듣기 좋다.

무얼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진다.

역시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를 말할 때마다 난감해진다.

무얼 하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다 .

모든 걸 하고 싶었지만 무얼 해야 할지 고를 수가 없다.


세상은 많이 변하여 참는 게 능사가 아니고'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나올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보다는 내가 중요하고 버킷리스트들이 둥둥 떠다닌다 .

마카롱이 유행하다가 탕후루가 유행하고 그때그때 긴 줄을 서서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

이런 시대의 간극이 힘들기는 하다.

참고 살아온 세월이 평가절하 되는 듯하다 .

구시렁구시렁 "나 때는 말이야" 하는 잔소리가 는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요즘 젊은 것들은···"이라는 말은 고조선 시대부터 있었다 한다.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이제라도 버킷리스트 만들어 볼까?

지금이라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대를 만났으니 그 또한 다행 아니겠는가?

시대를 초월하는 내 속성은 이런 낙관성에 있지 않나 싶다.

똑 부러지게 무얼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고 황희 정승처럼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우유부단한 형이라서

울뚝불뚝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라고 마음에 둔다

잔소리가 늘어 날 수밖에 없다.

잔소리도 대부분 혼잣 말이다.

내 감정 다스리기는 이렇게 오랫동안 내면화된 인내에 있지 않았나 싶다.

예로부터 참을 인자가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으니 미덕에 속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시대가 변하였으니 나도 조금 변해 보고 싶기는 하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버킷리스트 정도는 만들어 보고 싶다.

사실 버킷리스트 1번은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와서 '가 발목을 잡기는 하지만 참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되는 나이, 종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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