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따라 강아지들의 신세도 달라졌다. 어쩌면 세월보다 한 발 앞서 변해 온 존재가 강아지일지도 모른다. 6·25 이후 강아지만큼 신분 상승을 이룬 동물은 드물다. 전후의 강아지는 대문 옆 찌그러진 양은 그릇에 밥을 받아 먹었다. 대부분 가족들이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였다. 심술 난 며느리의 발길질을 받거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 보신탕으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 아이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애초부터 잡아먹을 요량으로 기르던 강아지도 있었다. 불과 반세기 전 일이다.
그런 강아지가 이제는 ‘반려동물’이 되었다. ‘똥강아지, 해피, 러키’ 같은 이름에서 ‘순이, 돌이’로, 이제는 아예 ‘우리 아들, 우리 딸’이 되었다. 부모님들은 휴대폰 속에서 ‘늙은 것’, ‘노인 충’이라 불린다. 개가 가족의 2순위로 올라서고, 부모가 5순위로 밀려났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건강이 불편한 부모님을 모시고 나들이 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개를 차에 태워 여행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개 카페, 개 호텔, 심지어 개 장례식까지 마련된 세상이다.웬만한 서민보다 호사로운 대접을 받는 강아지도 많다.
물론 반려견이 심리적으로 큰 위안을 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외롭고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반려견 덕분에 웃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 다만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내 즐거움에 빠져 남의 불편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반려견은 말은 못 하지만 사람을 따르고 위안이 되어 준다. 그러나 부모님보다 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라 도리의 문제다. 선호는 선택할 수 있지만, 도리는 선택 이전에 마땅히 지켜야 할 일이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다. 불공평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받아들이며 살아내야 하는 삶이다. 반려견은 중간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일 뿐이다. 부모보다 반려견이 더 소중하다 생각된다면, 그만큼 더 도리를 지켜야 한다.
자식과 반려견을 비교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반려견이 낫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지긴 한다. 그러나 자식에겐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삶은 동물적 본능에 머무를 뿐,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없다.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다. 그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선택했으면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려견을 보살피는 일은 대단한 책임처럼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만큼 간과하기 쉬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한 존재일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지만, 강아지는 주인이 대신 책임져야 한다. 목줄을 매고, 입마개를 하고, 배변 봉투를 챙기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일은 애견인의 책임이다. 강아지를 풀어놓고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며 방심하는 순간, 옆 사람에게는 불쾌한 하루가 된다. 특히 밀폐된 엘리베이터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자주 목욕을 시켜도 개 냄새는 싫어하는 이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일 수 있다.
물론 기본 예의를 충분히 갖춘 애견인들도 많다. 목줄을 매고, 큰 개에는 입마개를 씌운 채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선진 시민 의식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뚝섬 한강변을 산책하던 어느 여름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자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강아지 반, 사람 반이랄까. 개방된 공간이라 예의만 지키면 모두가 불편 없이 여름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노을이 아름다운 좁은 산책길에서, 한 할머니와 마주쳤다. 무릎이 불편해 보이는 분이셨는데, 내 옆을 지나며 일부러 몸을 굽혀 강아지를 품에 안으셨다. 내가 불편해할까 봐 배려하신 것이다. 고맙고도 미안했다. "어머, 저 때문에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저 강아지 좋아해요."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애견인들이 좋아 보였고, 나 또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외롭기 쉬운 세상에서 강아지와 함께 웃을 수 있다면 큰 복이다. 오솔길에서 만난 그 할머니처럼, 강아지의 신분 상승에 걸맞은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