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36

52년생 정영애

by 우선열

노후 기간이 길어지며 독거노인도 늘고혼자 사는 노인들의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나이 70이 가까우니 영애 씨나 영미 씨나 독거노인이 맞기는 하지만아직은 소소하게 사회활동도 할 수 있고 건강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으니 노인문제가 먼세상의 남의 일 같기도 하다가 가끔 처량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늦게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갈 때, 끼니를 놓쳐 혼자 식은 밥을 허겁지겁 먹을 때,무엇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망망대해에 혼자 떠있는 조각배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삼식이 남편 흉을 보는 친구들이 복에 겨운 투정 같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자식들과의 동거는 원하지 않는다. 옛말에 남편 밥은 앉아서 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 다더니 효자 아들 며느리라도 남의 집처럼 불편하기만 하다. 70 가까이 살아온 생활 방식을 젊은이들에게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못 본 척, 못 들은 척, 말 안 하고 사는 일이 고초 당초 보다 매섭다는 젊은 시절 시집 살이 못지않다. 가끔 아프다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오는 아들딸에게 미안하기는 하다.젊은 시절 치열한 삶을 겪어 보았으니 제 자식 건사 잘하고 알콩달콩 사는 자식들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가슴 한구석 아린 영애 씨이다

잊어버릴만하면 모시고 살겠다고 이야기 해오는 자식들의 말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수족을 놀릴 수 있는 힌 혼자 살 것이며 혹시 치매나 다른 병으로 혼자 몸을 건사하지 못할 때는 양로원으로 보내달라고 틈틈이 자식들에게 말하곤 한다 . 순간순간 자식들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노부모를 모시는 일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영애 씨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늙으면 아이가 되어 간다지만 아이 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는 어른이다. 본인의 사고방식과 한평생 살아온 족적을 자식들에게 맞추는 일이 쉬운 건 아니다. 아이처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지우는 일이니 말이다. 힘겨웠지만 잘 살아낸 과정을 반추하며 그래도 잘 살아 낸 삶의 족적을 간직하고 싶다.

보잘 것 없지만 손때 묻은 내 물건들이 소중하다. 어머니를 모시겠다며 큰 집으로 이사한 친구 아들이 어머니 방에 새 가구를 갖춰 놓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자신이 쓰던 손 때 묻은 가구들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안 친구의 실망한 얼굴이 생생하다. 친구는 실망한 표정조차 짓지 못하고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했다고 한다.

낯 선 새 가구도 싫고 아이들 생활 패턴에 맞춰 생활하기도 불편한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눈치를 보는 것 같으니 집안이 두루 편하지 않은 거 같다고 불평이다. 움직일 수 있는 한 따로 편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며

가끔 만나면 그립고 반갑던 자식들이 동거하며 귀찮고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더 늙어 치매가 오거나 수족이 자유롭지 못할 때 자식들이 겪어야 할 고생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친구이다.

지금 같으면 영애 씨도 자식들에게 짐 덩어리가 되느니 혀 깨물고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정신이 멀쩡하지 않거나 수족이 마음대로 안되는 순간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듯하다. 일찌감치 영애 씨는 수명연장 치료를 하지 않을 것과 시신 기부 신청을 해 놓고는 있다. 가능한 한 아이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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