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입지?' 외출할 때마다 거울 앞에서 하는 말이다. 한 번도 벗고 있는 적이 없건만 식사 때마다 '무얼 먹지? '하는 것처럼 외출을 앞두면 무얼 입어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삶이 의식주 생활이니 살아 있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숙명 같기는 하다. 그렇게 보면 유니폼이 생활화되었던 시절이 마음은 편했다. 걱정할 것 없이 유니폼을 입으면 되었다.
전후 물자가 귀하던 시절엔 유니폼이 많았다. 학생들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군인들은 군복, 직장에도 직장 나름 유니폼을 갖춰 입었다. 은행원은 은행원대로 철도공무원은 철도 볶을 예비군 복도 있었으며 하다못해 새마을 운동 복도 있었다. 무얼 입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장례식장에서는 검은 옷을, 결혼식에는 제일 예쁜 옷을 꺼내 입으면 되었다. 예고 없이 치러지는 장례식이니 장례식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어야만 했다. 고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해 아무도 불만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요즘은 장례식장에서도 검은 옷만 고수하지는 않는다. 평상복 차림의 조문객이 많다. 직장에서도 지금은 유니폼을 고수하는 직장은 별로 없다. 직장의 특성상 유니폼을 입어야 할 때도 그 시절처럼 유니폼이 생활복이 되지는 않는다. 출퇴근 시에는 자유복을 입고 출근해서 유니폼을 갈아 입는 경우가 많다. 유니폼이 있어도 '무얼 입지'?'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학창 시절이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부족한 물자 탓에 절약을 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한참 자라는 성장기 아이들이건만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교복은 한 벌이었다, 도포자락같이 큰 교복을 입고 입학해서 배꼽이 드러나는 작은 옷으로 졸업을 했다. 그나마 입학할 때 입었던 교복도 새것이 아니라 물려 입은 경우도 많았다, 무릎이나 팔꿈치가 반질반질 닳아 있던 옷이었다. 무얼 입냐가 사치였던 시절이다. 교복 한벌로 대를 물려 입어야 했던 궁핍한 시절이었다. '무얼 입지?'는 사치였다.
지금은' 무얼'입나'보다는 '어떻게 입냐'의 문제인 것 같다. 개성있게 차려입는 건 물론 커플룩이니 시밀러 룩이니 하면서 동행자와의 옷차림 조화까지 신경쓰고 있다. 무얼 입지가 아니라 어떻게 입지가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출이 결정되면 '무얼 입지? '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옷장 가득 들어 있는 옷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즘은 변덕스러운 날씨이니 날씨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 거리엔 반소매 티셔츠부터 패딩 점퍼까지 저마다 개성에 맞춰 입고 있건만 나는 무얼 입어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옷장을 잔뜩 뒤집어 놓고 입고 있던 옷에 외투나 겉옷 하나 정도 걸치는 정도가 되고 만다. '무얼 입지?'는 애초주터 쓸데 없는걱정이었다. 교복을 대물림하던 시절을 잊고 만 것이다. '걱정해서 걱정이 해결되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걱정하지 말고 행동할 일이다.걱정을 해결하는 가장 단순한 비법이다. 전후 가난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들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건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