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꽃말은 사랑 양보 겸손이다. 봄이 되면 제비꽃은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피어난다. 언 땅을 비집고 나오는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창작도 이와 같다. 한 편의 아름다운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장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언 땅을 뚫고 꽃을 피우는 제비꽃처럼 한 편의 창작물에도 그만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제비꽃이 한꺼번에 피듯이 창작물도 동시에 같은 생각과 비슷한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비슷한 창작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창작물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흔한 일이다. 수학의 새로운 사실이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헝가리 수학자 파르가스 보여이는 쌍곡 기하를 발견했다는 아들 야노시 보여이에게 "만약 네가 그 문제의 해답을 얻는 데 성공했다면 빨리 발표를 서둘러라, 마치 제비꽃이 피는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한꺼번에 발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었다. 이 경고는 현실이 되어 같은 시기에 러시아 수학자 로바체프스키가 야노시 보여이와 똑같은 이론을 발표했다. 이처럼 창작의 세계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고 이는 저작권 문제로 이어져 개인 간 혹은 국가 간에 첨예한 갈등을겪기도 한다. 그런데도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후배들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려고 자신의 발견을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고 한다. 사랑과 양보와 겸손이다. 나는 이 제비꽃의 꽃말이 어려운 저작권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었으면 좋겠다
창작은 모방에서 나온다. 훌륭한 창작물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울 수는 없다. 어디선가 듣고, 읽고, 경험한 것에서 싹이 튼다. 문장의 뿌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양분을 빨아들이고 경험과 기억이라는 줄기에서 감정의 싹이 튼다. 창작자들은 누구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자체를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영향을 어떻게 소화하여 자기화하는가에 달렸다. 어떤 방식으로 표현했느냐에 따라 표절도 되고, 창작이 될 수도 있다. 이 애매한 경계 때문에 저작권 문제는 어려워진다. 법적인 판단에서도 표절여부는 정밀한 분석과 긴 논쟁을 거쳐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요구한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어떻게 쓰기 시작했는가? 영감의 원천은 어디인가?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창작의 고통에서 우러난 깊은 사랑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은 양보의 미덕을 부르고 그런 과정을 겪으며 겸손해질 수 있다. 창작물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창작 도구가 등장하면서 그 경계는 더욱 흐려졌다. AI가 만들어낸 문장을 어느 시점부터 ‘창작물’로 인정할 수 있을까?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한다. 학습한 수많은 문장 속에는 내 문장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AI를 이용해 내문장을 도용할 수도 있다. AI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과연 창작인가, 표절인가? 그 속에는 수많은 작가의 고통과 사랑, 기억이 배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AI를 사용하는 사람은 더욱 겸손해야 한다. 창작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출처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이 타인의 창작물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내 블로그 초보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이웃 블로거의 글을 읽다가 한 이웃의 블로그에 내 글이 그대로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분명 토씨하나 틀림없는 내 글이건만 글의 출처가 없었다. 마치 본인의 글처럼 태연하게 올려져 있었다. 나의 노력이 한순간에 다른 사람 것으로 둔갑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배신감으로 전신이 떨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글이었는데도 그 글을 통하여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그 블로그를 통해 내 글이 알려지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동일한 제목 때문인 것 같다. 불쾌함과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 글을 여기서 볼 수 있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그래도 출처는 밝혀 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을 달았다. 그 사람은 출처를 밝히는 대신 글을 내려 버렸다. 서운하긴 했지만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자위하고 말았다.
글의 사명은 읽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고통스럽게 쓴 창작물이라 하더라도 읽는 이가 없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 글이나 다름없다. 어짜피 사장될 글이라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창작의 고통이 혼자만의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일이 된다. 내 블로그에서 도용된 글도 한 편으로는 내 글에 지렛대가 되어 준 셈이다. 다만 출처를 밝히는 일은 잊어서는 안 된다. 창작의 고통을 이해하고 겸손하게 출처를 밝혀야 한다. 출처를 밝히지 않는 일은 도둑질과 같다. 다른 사람의 노력과 시간과 고통을 훔치는, 도둑질 중에서도 가장 질 낮은 도둑질이다.
'창작은 모방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자. 고통 속에서 피어난 창작물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으면 한다. 널리 알리고 회자되어야만 가치가 완성된다. 저작권에는 어느 정도의 양보와 겸손이 필요하다. 라플라스처럼 후배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모방과 창조의 애매한 경계를 인정해야 겸손해질 수 있다.
창작물은 제비꽃과 닮았다. 고통 속에서 한꺼번에 아름답게 피어난다. 제비꽃의 꽃말처럼 사랑 양보 겸손이 필요한 일이다. 저작권은 창작자를 보호하고 동시에 창작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제비꽃 피듯이 함께 피어나며 서로의 창작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