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영업사원 5
처음 부동산에 입문했을 때 물론 그녀는 이런 상황을 알지는 못했다
경단녀인 그녀가 할 수 있다는 일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살면서 경험한 부동산 매매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정도였다
잘나가는 기존 사원 서 차장이 있고
신입인 그녀와 정차장이 거의 같은 시기에 아이스 블랙을 했으며
뒤이어 정차장과 같이 입사한 김윤희도 자리를 잡아
최 부장과 6부는 2부에 이어 탄탄대로를 걷는 부서가 되었다
사람 좋은 좋은 최 부장은 연신 싱글벙글이어서 2부와 대조적이었다
2부 윤 부장은 부서에 잔금이 들어오는 날에도 직원들을 독려했고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며 업무 외 시간에도 교육을 하곤 했다
정차장 말에 의하면 체계적인 114 교육이라서
교육받은 대로만 하면 개척 영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정차장은 최 부장을 마땅치 않아 하며 호시탐탐 6부로 옮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2부 오 차장과도 친밀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도 알게 모르게 회사의 문화를 익혀 갔다
무엇보다 임시직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한 부서에서 하루 한두 명쯤은 직원 교체가 있었으니
기존이 나가는 일도 신입이 들어 오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입사를 해도 부장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바로 퇴사를 당했다
그들은 잘린다는 표현을 썼다, 비속한 표현만큼 처절한 심정이기도 했다
하루살이 신세라는 자각은 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했지만 자긍심에 심한 타격을 입는 일이기도 했다
영업이라는 일 자체가 거절에서 시작된다고 할 만큼 어려운 일인데
내가 속한 조직에서조차 안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계약 건수가 많은 사람은 우수사원이고 그렇지 못하면 언제 어떻게 자리를 내주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직원들 끼리는 알게 모르게 연락망이 형성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퇴사 당할 경우 다른 회사로 옮기기 위한 정보가 목적이었지만
우수 직원을 빼내가는 수단이기도 했다
더 나은 보수와 근무 조건을 제시하며 직원들은 서로를 유혹했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일도 있었다
이동제도에는 충원 수당이 있어 직원을 영입하면 수당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충원한 직원이 계약을 할 경우에도 추가 수당이 있었다
정차장은 소식통이었다
누가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조건이 더 좋다거나 계약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들을 꿰고 있었다
언제든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둥지 증후군이 심한 여성들이니
퇴직 당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포였다
퇴사 당하는 사태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정차장은 워낙 일을 열심히 하기도 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으며 하루 종일 전화기에서 손을 떼지도 않았다
입술이 부르트기도 했지만 불평을 말하지도 않았다
정차장에게는 에게는 삶이 그만큼 절박했다
"이것 좀 봐 언니 내 팔뚝 굵지 ?"
팔을 들어 근육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꽃집 했거든, 난을 키웠어요, 사람들은 꽃집 했다 하면 '좋겠다 예쁜 꽃만 보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아니야, 꽃집이 얼마나 중노동인 줄 알아? 큰 화분 들어 날라야 하자 비료포대 옮겨겨야지
거름 줘야지, 물 줘야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어, 그래도 돈이 잘 벌릴 땐 재미있었어,
일본으로 난을 수출할 땐 자고 깨면 비닐하우스가 하나씩 느는 것만 같았거든
남편은 신이 나서 돈이 들어오는 족족 비닐하우스를 늘려 갔지 그러다 IMF 가 터진 거야,
수출길은 막혔는데 기름값은 오르고 무리를 해서 늘린 비닐하우스를 속수무책 방치해야 했어
난이 죽어 나가는데 내가 하루하루 죽어가는 것 같더라고,
은행 이자는 겁도 없이 쌓이고 결국 집 팔고 농장 팔고 단칸 방으로 내려앉았어, 그것도 월세.
딸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그것만큼은 계속하게 하고 싶어, 재능도 있고 곧 콩쿠르도 열리거든,
입시에 영향이 있는 콩쿠르야, 지금까지 애써 왔는데 물거품이 되게 할 수는 없지
딸에게 벌써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말려도 비닐하우스를 끝도 없이 늘려가더니만 남편은 부도가 나자 술만 마시고 있어, 악착같이 돈 벌어서 딸 피아니스트 만들고 아들 잘 키울 거야
나 돈 벌 수 있겠지 언니?"
"그럼 벌써 계약 한 건 했잖아, 잘은 모르지만 우리 회사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정차장이 걸,
지난번 잔금 무사히 들어와서 남편이 좋아했겠다, 맛있는 거 먹었어?"
"아니, 언니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흥청망청 쓰겠어, 남편에겐 비밀로 하고 딸 학원 수강료만 냈어,
난 집안 살림하는데 돈 한 푼 안 보탤 거야, 남자가 정신 차려야지, 술만 마시고 있으면 되겠어?
정신 차리고 가족들 살릴 생각을 해야지,전기세가 밀렸는데 안 냈다니까, 끊겨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고 버틸 거야 그런 건 남편이 벌어서 해야지,
지금이라도 농원에서 일하면 밥벌이는 할 텐데 안 하고 술만 마시는 게 너무 미워
남편 모르게 아이들 학비만 조금씩 주고 있어, 급해지면 남편이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지,"
그녀도 남편 생각이 났다.
정차장의 태도가 몰인정한 것 같기도 하고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에서 수당의 반을 뚝 떼어 남편의 통장에 넣어준 자신이 바보 같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재기에 노력하고 있고
절단 위기의 다리도 최악의 위기를 넘기고 재활 훈련을 통해 원상 회복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뜻밖의 목돈에 놀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하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 번 돈인데, 이걸···" 하면서도 두 번은 사양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이 와도 남편은 그녀와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줄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지금 그녀는 그녀의 아들을 책임지고 있는 형편이니 아이의 학비를 벌어야 한다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휴일엔 아이와 함께 남편을 만나러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사춘기 아이는 어린애 때처럼 살갑지는 않았지만 부모의 별거에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걸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마마보이를 자칭할 만큼 엄마 바라기였던 아들은 커 가면서 은근히 아빠 편을 들기도 해서
아빠 없는 빈자리가 염려스러웠는데 엄마가 겪는 어려움을 알아서인지 별 내색은 하지 않고
내가 알게 모르게 병원으로 가서 아빠의 병원 시중도 곧잘 들곤 한다
아이의 철든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