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척의 시대와 미니멀리즘

by 우선열

축적의 시대를 살았다.

땔감을 가득 쌓아놓고 광 안에는 먹거리를 차곡차곡 쟁여 두었다.

집안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광 열쇠는 최고의 권력이었다.

고부간의 갈등은 광 열쇠를 차지하는 것으로 승부가 났다.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는 무엇이든 모으는 게 트렌드였다

취미생활은 거의 수집에 있었다.

집집마다 돼지 저금통에 동전이 쌓였고 우표 모으기, 화폐 모으기, 그릇 모으기, 인형 모으기, 집집마다 물건을 쌓아 놓는 취미 일색이었다

이때쯤 안방 벽에는 가족들의 사진 액자가 빼곡했다

부족한 걸 채우고 싶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지금은 물자가 풍부한 시대이다

먹거리를 쌓아 놓기보다는 신선 재료를 선호한다

유통기간을 따져 가장 신선한 제품을 골라야 한다

묵히고 쌓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때그때 가장 싱싱한 것을 소비해야 한다.

염장이나 통조림 같은 가공식품이나 보관 식품들은

첨가물이 있거나 염분이 과하다는 이유로 기피 식품이 되었다.

김장을 백포기 해야 마음이 놓이던 시절과는 다르다

싱싱한 날 것의 샐러드가 식탁을 차지한다.

쌓아 놓아서는 싱싱함을 보존할 수 없다

싱싱하려면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만 한다

즉시 사용되지 못한 것들은 버려지고 만다

물자가 풍부하니 쌓아둘 필요가 없다

한 발자국만 나가면 필요한 것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물건을 쌓아 놓는 대신에 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돈보다 간단한 카드도 있다.

카드조차 번거로운 요즘엔 온라인으로 모든 걸 해결한다

카드 서너 장 가지고 다니던 시절도 지났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니까 있는 사람들이다

있는 사람들일수록 비울 수 있다.

그때그때 채워 넣을 수 있으니까.

부족한 사람들은 쌓아 놓아야 안심이 된다.

결핍의 고통을 겪지 않으려 한다

요즘은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일이야 별로 없겠지만 상대적 빈곤은 더 클 수도 있다

SNS는 보기 좋은 것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것이 마치 일상인 것처럼 포장되지만 사람이 마네킹일 수는 없다

그림같이 살아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 컷의 SNS 사진이거나 잠시 동영상이 삶 전체인 듯 비친다

상대적 빈곤을 앓게 된다

마음엔 불만이 쌓여가고 과소비 열풍에 휩쓸리게 된다

미니멀리즘의 단면이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으니 삶에는 나름 무수한 단면이 있겠다.

미니멀리즘의 여러 단면 중에서 있을 수 있는 단면이다

축적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다보면

문득 그리워지는 축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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