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67

59년새 이윤진 7

by 우선열

 내 생애 최대의 실수였다

술에 취해 최 상무와 하룻밤을 보내게 되어 버렸다

야비한 인간이었다

이튿날 출근하자마자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의 반응까지 낱낱이 묘사가 되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직원들을 마주하기가 겁이 났다

언니가 재빨리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당분간 집에서 쉬는 것이 좋겠다며 나를 다독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언니가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남편과 별거 중인 사실, 돈을 요구하던 애인, 언니를 음해하며 최 상무와 밤을 보내게 된 사실까지

모르는 게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평온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질책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뒤처리를 언니에게 맡기고 빈 몸으로 회사를 쫓겨 나오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영업계에 알려진 이름도 부담스러웠다

이윤진 이름 석 자 대면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전설적 영업왕이었다

그만큼 치욕스러운 추문도 번져 나갈 생각을 하니 몸이 오싹해졌다

접시와 여자는 내돌리면 깨진다며 여자 영업인들을 우습게 보는 풍조에 분노했었는데

내 행위로 인해 열심히 사는 영업인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 것 같았다

다시는 영업장에 발을 디뎌 놓지 못할 거 같았다


억울한 심정도 있었다. 단 한 번의 실수였다

재수 없게 나쁜 놈한테 걸린 것이다

제 입으로 자랑삼아 까발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태까지 벌어질 수는 없었다

한 번쯤 실수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업가정주부로 집에만 있는 사람도 집을 방문하는 우편배달부와 바람을 필수 있다던데

사람들은 영업하는 사람들을 싸잡아 욕할 게 뻔하다

나 때문에 선량하게 일하는 영업사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착한 선배를 모함한 죄가 큰가 보다

어떻게 선배를 보아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 이틀 집안에 칩거해 보았지만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영업활동의 결과로 가정경제도 엉망이었다

밀려 있는 고지서 독촉장들이 수북이 쌓였다

장기 대출로 분양받은 아파트 원리금 상환이 제일 문제였다

아파트 한 채를 팔아야 할 만큼 심각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염치없지만 뒤처리를 맡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무조건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언니는 언니에게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만 자숙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언니도 사태의 책임을 지고 퇴사한다는 말을 동요 없이 담담히 전했다



나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도 잃은 언니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나도 피해자이니 내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공짜밥은 없는 법이다

영업 실적 없이 승진했으니 그만한 책임은 지는 것이 옳다

실적은 적으면서 나보다 팀장 승진도 먼저 했었다

영업 세계에서는 실적만이 인격이라더니

울며불며 부당함을 호소했었지만 나만 불이익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일은 일이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별개이다

친하기에 더 질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전화통 잡으면 얼마든지 실적을 올릴 자신이 있다

미웠다가 미안했다가 억울했다가 죄책감이 엄습하기도 하고

불안정한 날들이 흘렀다

신입시절부터 겪어낸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언니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내가 살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같았다

모든 걸 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서 다시 시작하자

이름도 바꿨다 이 경하

나는 지금 촉망받는 신입사원이다

언젠가 언니 앞에 다시 서게 되는 날까지 부끄럼 없이 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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