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정성껏 누룽지를 만들어 주었다.
잘 지은 밥에는 살짝 누룽지가 있어야 한다 .
밥의 풍미도 풍미려니와 식사 후 마시는 숭늉의 구수한 맛 때문이다
숭늉을 마셔야 비로소 식사가 끝난 것 같은 시절도 있었다.
전기밥솥 때문인지 어느샌가 숭늉이 식탁에서 사라졌다
식사 후에는 너도나도 커피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게 요즘 젊은이들 트렌드이다.
나이 든 사람들도 식사 후의 커피 한 잔이 당연시되고 있다
숭늉이 점점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오래된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기밥솥에서 짓는 밥에는 누룽지가 생기지 않으니
요즈음은 누룽지를 따로 만들어 팔기도 하고 누룽지 만드는 조리도구도 생기고 있다
고소한 누룰지 자체를 간식으로 즐기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누룽지 맛은 역시 숭늉이다
텁텁하고 구수한 물 맛도 일품이고 부드러워 둥둥 뜨는 밥알은 부드럽기 짝이 없다
윤기나고 찰기 있는 밥과는 또 다른 맛이다
같은 솥에서 동시에 나왔건만 맛도 모양도 다르다
숭늉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누룽지의 영양을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맛있으면 칼로리도 제로'가 된다 하니 맛있게 먹으면 영양도 잘 흡수되지 않을까?
누룽지 효능을 극대화한 검증되지 않은 떠도는 문구들을 보며 혼자 하는 생각이다.
핵 가족 시대이니 밥을 조금만 지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남게 된다
찬밥이 생긴다.
서러운 처지의 사람들을 찬밥 신세라고 표현하기도 하니
갓 지은 따뜻한 밥과 찬밥은 처지가 다르다.
한때는 누가 찬밥을 먹느냐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이다
그전에는 대부분 찬밥은 며느리들 차지였다
부엌 구석에서 서서 물 말아 들이키듯 먹곤 했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게 다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밥 지을 때 생기는 누룽지는 따로 품을 들이지 않지만 친구는 일부러 누룽지를 만들었다.
찬밥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이용하는 주부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밥이 아니라 쌀이 남아도는 세상이다
쌀 소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농가 살리기 운동으로 쌀을 사놓은 친구가 쌀 소비를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외식과 간편식이 늘고 반찬은 풍성해졌지만 밥의 양은 줄고 있는 현실이다
과잉 탄수화물이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빵과 국수도 탄수화물이건만 쌀이 혼자 누명을 뒤집어쓰는 것 같다.
어쨌거나 누룽지 만드는 지난한 일을 기꺼이 해내어 친구가 누룽지를 나누어 주었다.
누룽지는 일단 밥을 지어야 만들 수 있다
밥보다 더 많은 인내와 품이 들어간다
일단 밥이 완성되면 밥알을 넓은 팬에 얇게 펴 놓아야 한다
쌀의 점성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물을 뿌려가며 이리저리 편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오래 익혀야 한다
자칫 불이 세지면 까맣게 타서 숱 덩이가 되니 약한 불에 익힌다
가끔 물을 뿌려 팬에 달라붙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밥처럼 한번 부르르 끓어오른 다음에 뜸을 들이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오래 지키고 앉아 적당한 시기에 물을 뿌려가며 노릇노릇 누룽지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칫 너무 익히면 까맣게 타서 쓴맛이 나니 살짝 진한 갈색이 될 때까지 익히는 센스가 필요하다
친구는 아직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현역이다
손가락 관절염도 있어 본인 몸도 보살펴야 하건만 부지런한 성정이 일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일하는 틈틈이 누룽지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니
그 정성에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사양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맛있게 잘 먹는 일이 친구의 정성에 보답하는 일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또래들은 1인 가족이 많다.
집밥이 좋은 줄은 알지만 혼자 먹으려고 끼니 때마다 식사를 챙기기는 쉽지 않다
세상도 좋아져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지천이고
집에서 만들더라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놓고 조금씩 덥혀 먹게 된다.
맛과 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버리는 음식도 많아진다
게다가 모처럼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밖에서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마치 머피의 법칙 같다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외식할 일이 생긴다, ' 선우의 법칙' 이렇게 패러디 하고 싶다.
집밥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이다
물론 귀찮은 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하다
평생 가족 먹을 밥을 해 왔는데
이제 와서 내가 먹는 음식을 혼자 만들어야 하는 게 서글프다.
음식은 남이 만들어 주어야 맛있는 법이다
친구가 누룽지를 만들어 주었으니 홍복이다
나는 오늘 누룽지로 구수한 숭늉을 끓일 것이다
숭늉 한 모금마다 친구의 따뜻한 우정을 되새겨 보겠다
오늘 나는 친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